'국민 기금'의 재래

『연합뉴스』의 와다 하루키 인터뷰 중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있다(강조는 인용자).

--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일반 일본인의 인식은 어떤 상태라고 보는가.
▲지금 와서 그것(교육 부족)이 문제다. (우익성향의 잡지를 가리키며) 일찍이 이렇게 주간지가 이 문제를 거론한 일은 없었다. 전체적으로 한국을 싫어하고 박 대통령을 미워하도록 매번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싣고 이렇게 저렇게 공격하고 있다. 이런 이상한 상태가 됐다. (생략)

-- 일반인의 의식마저 위험한 상태가 됐다는 것인가.
▲(우익 세력이) 그렇게 캠페인을 하는 한가지 (근거)는 한국이 일본 정부가 아시아여성기금으로 사죄하고 속죄하려고 신청했는데 한국이 거절했다는 것이 일본인으로서는 아프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그런 것을 모두 안다. 그래서 일본이 사죄하고 뭔가 하자고 할 때 그것의 성공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 돕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일본이 하려고 하는 것이 모두 좋은 것일 수 없으니 비판도 필요하지만, 머리를 숙이고 미안하다고 말하려 할 때는 한국인도 일본을 도와줘야 한다. 베트남과 한국 사이에도 문제가 있지 않느냐. 마찬가지다. 이것은 역시 (일본이) 사죄를 하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

(「<인터뷰> 와다 하루키 "위안부 위령비에 머리 숙여야"」『연합뉴스』2014.3.18)

모처럼 아시아여성기금(이하 「국민 기금」)을 만들었는데 한국이 거부했기 때문에 우익이 판을 치게 되었다, 다음에 일본이 「뭔가 하자고 할 때」, 「한국인도 일본을 도와 줘야 한다」고 와다는 한국을 향해 호소하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를 빌미로 한국에 「화해」 수락을 강요하는 것으로, 협박이라고도 해야 할 놀랄 만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이러한 「이야기」의 유포는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둘러싼 「국민기금」형 「화해」모델의 재래에 대비하여 미리 비판을 무력화해 두기 위한 발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화해」의 목적에 대하여 가장 노골적으로 발언해 온 것이 와다와 마찬가지로 「국민기금」을 추진한 오누마 야스아키일 것이다. 최근, 「아사히신문」에 게재된 「일본의 애국심」이라는 제목의 인터뷰 (2014년 4월 16 일자 조간)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에 대해서, 아사히는 반대, 요미우리는 찬성이라는 논조로 시종하고 있는데, 10년, 50년 후의 일본의 안전보장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두 언론이 논의해 주었으면 좋겠다. 중국의 군사적 폭주를 억제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보아 미일안보체제의 충실화는 확실히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일본이 과거의 전쟁을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한중을 포함한 세계 각국이 알아 준 다음의 이야기가 아닐까.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고, 수정적인 역사관을 노골적으로 보이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것이 일본국민의 안전보장에 정말로 이바지하는 일인가. 그런 것을 서로 논의하는 것이 서로 비판하는 것보다 훨씬 건설적이지 않을까.」

한중과의 「화해」와「미일안보체제의 충실」은 세트라는 것이다. 오누마는 「전후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고 세계의 각각으로부터 높이 평가되는 풍족하고 평화롭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냈다. 그것을 우리의 긍지로 그려내지 못하고, 전쟁전・전시중의 일본에 초점을 맞추어 애국인가 반성인가의 양자택일의 극론을 계속 보여 왔다. 그 결과, 왜곡된 애국심이 시민들 가운데 확산되었다」고도 말하고 있어, 일본 언론들이 반성만 요구했기 때문에 전후 일본에 대한 「긍지」를 가지지 못하고 우경화가 진행되었다는 인식을 나타내고 있다. 어쨌든, 일본을 달래기 위해서는 전후 일본을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일본 비판에 대해서는 「백년 국치의 굴욕감의 반대인 현재 중국의 공격적인 노선이 영구히 계속될 수는 없다. 대립하는 것보다, 각국과 함께 중국의 지나친 피해자 의식을 달래어 졸업하게 하기 위한 궁리를 일본은 해야 한다」고 하며,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소프트 파워」, 즉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의료 시스템, 애니메이션이나 패션, 또 질서가 잘 잡힌 시민 생활 규칙」을 이용해 「중국의 품에 뛰어 들어가 윈윈의 관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노골적으로 파타나리스틱한 자세를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오누마 자신의 중국 인식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기는 하다.

 와다와 오누마는 각각 다른 대상을 향해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우경화의 원인이 일본 비판에 있다고 하는 담론은 작년 한국에서 출판된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뿌리와 잎, 서울, 2013년)에도 나타난다.

「90년대 이후 일본과 한국의 진보가 일본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던 것도 자신과 다른 사고를 무조건 ‘우경화’의 증거로 보려 했던 냉전적 사고가 시킨 일이다. 이 기간 동안 일본도 한국도 일관되게 ‘일본의 우경화’를 외쳤지만, 이후 일본에는 오히려 패전 후 처음으로 진보정권이 들어서 그런 비판이 올바른 비판은 아니었음은 증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후에 다시 보수 정권이 들어선 데에는, 2011년 8월의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비롯한 한국과의 갈등이 영향을 끼친 면도 없지 않다. 말하자면 한일 간의 연대는 정치에서도 효과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진보좌파의 연대 운동은 결과적으로는 20년 전보다도 더 많이 위안부 문제에 반발하는 이들을 만들어놓았다.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을 통해 ‘일본 사회를 개혁’하겠다던 좌파운동 방식이 결코 효과적이지 않았음을 증명한 셈이다.」(305페이지)

일본과 한국의 「진보」가 「국민기금」을 제안한 일본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우경화」라고만 계속 비판한 결과, 「위안부」문제에 반발하는 사람들을 대량적으로 낳았다는 것이다. 이 「제국의 위안부」는 전저의 「화해를 위해서」보다 더 심한 서술의 온퍼레이드로, 읽으면서 계속 놀라게 된다. 예를 들자면, 어떤 전「위안부」가 어떤 일본병사를 잊지 못한다고 말한 증언을 인용한 다음에 다음과 같은 해석을 제시한다.

「물론 이런 기억들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기억일 수밖에 없다. 설사 보살핌을 받고 사랑하고 마음을 허한 존재가 있었다고 해도, 위안부들에게 위안소란 벗어 나고 싶은 곳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이런 식의 사랑과 평화가 가능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는 동지적인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녀들에게는 소중했을 기억의 흔적들을 그녀들 자신이 ‘다 내삐렀’다는 점이다. “그거 놔두면 문제될까봐”라는 말은, 그런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것이 그녀들 자신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해방 이후 내내 그렇게 ‘기억’을 소거시키며 살아 왔다」(67 페이지)

 이것은 결코 예외적인 기술이 아니고, 오히려 「동지적인 관계」라는 말은 이 책의 키워드의 하나이다. 「제국의 위안부」의 「후기」에는 「비판자들은 일본에서 내 책이 높이 평가된 것(아사히 신문사가 주최하는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 수상)을 두고 일본이 우경화되었기 때문에라고 말했고, 내가 마치 일본의 우익과 비슷한 주장을 한 것처럼 취급했다」 (317페이지)고 자신이 부당하게도 우익 취급을 받았다고, 은근히 서경식이나 윤건차의 비판을 시사하면서 반발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술을 보면 「일본의 우익과 비슷한 주장」이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일본어로 번역될 거라고 한다. 「국민 기금」의 재래와 아울러 출판 후에 어떤 「평가」가 이루어지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国民基金」の再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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