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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제국의 위안부』의 ‘방법’에 대하여(2)

박유하『제국의 위안부』

박유하『제국의 위안부』일본어판이 출판되었다. 다시 한번 이 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인이나 타이완인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인과 동일한 ‘제국의 위안부’로, 적국인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였다.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에 대한 폭력적인 납치나 강제연행도 존재하지 않으며, 대다수는 ‘업자’에 의해 사기당한 사람들이었다. ‘위안부’로 불린 여성들도 점령지 여성들과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일본군 병사에 공감을 표하고 ‘동지의식’을 가진 사람도 있었는데, 그러한 감정은 해방후 한국사회의 압력 때문에 드러내지 못했다. 일본군의 책임을 물을 근거가 되는 ‘법’은 없으며, 오히려 위안부 여성들의 개인 청구권을 한일회담에서 포기한 것은 한국정부였고, 개인보상 상당 부분의 금액을 일본정부로부터 수취했다. 따라서 일본정부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한국의 운동단체나 정부는 본질적으로는 보상이었던 ‘국민기금’을 거부하고 무리한 일본에 대한 책임추궁을 반복하여 일본을 지나치게 우경화시켰다. 이제 대화를 진전시켜 ‘위안부문제를 해결’하여 여성들을 ‘한 사람의 개인’으로 돌려보내 주어야 한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를 논하고 있지만, 골자를 정리하면 이와 같이 될 것이다(다만 의외로 본서를 읽어도 결국 ‘위안부문제의 해결’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전에 본서의 한글판에 대해 그 ‘방법’이 대단히 자의적이고 의심스러운 곳이 많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박유하 『제국의 위안부』의 ‘방법’에 대하여」). 이번에 일본어로 출판된 것을 보고 이러한 관점에서 한글판과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았다. 자세하고 전면적인 검토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한글판 때부터 문제시했던 부분에 대해 흥미로운 수정이 가해졌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원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위안부’의 모집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지만, ‘정신대’의 모집은 전쟁 말기, 즉 1944년부터였다. 그리고 정신대란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시행된 제도였다. 일본은 1939년부터 ‘국민징용령’, ‘국민근로보국협력령’, ‘국민근로동원령’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가며 14~40세의 남자, 14~25세의 미혼 여성을 국가가 동원할 수 있도록 했는데, ‘12세 이상’이 대상이 된 것은 1944년 8월이었다(일본 위키피디아 ‘여자정신대’ 항목).”(43쪽)

 

 처음에 이것을 읽었을 때 내용 이전에 wikipedia 항목을 출전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 조선 식민지 지배나 전시 동원이라는 극히 논쟁적인 테마의 출전으로 wikipedia를 제시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행위이다. 더욱이 열람일 기재도 없으므로, 어느 시점의 기사를 참조하면 되는지 알 수 없다(책 말미의 참고문헌 일람에는 항목 자체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또한 말미에 “식민지 조선에서는 공식적으로 발동되지 않았다”고 되어 있지만, 이 문장을 읽어도 무엇이 “발동되지 않았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인용으로 보이지만, 출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확인도 할 수 없다.

 

과연 이대로 번역되어 있지는 않았는데, 이번 일본어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 있다.

 “위안부 모집은 이른 시기부터 있었지만, ‘정신대’(=근로정신대) 모집은 전쟁 말기, 1944년부터였다. 그리고 정신대는 처음부터 조선인을 상대로 행해진 제도가 아니었고, 일본에서 시행된 제도였다. 일본은 1939년부터 ‘국민징용령’ ‘국민근로보국협력령’ ‘국민근로동원령’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면서 14~40세의 남자, 14~25세의 미혼여성을 국가가 동원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12세까지 모집 대상 연령이 내려간 것은 1944년 8월이었다(정혜경, 2012).

그 조차도 “조선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발동되지 않았다”(이영훈, 2008, 120쪽)”(52쪽)

 

이 수정에 의해 당초에는 출전이 없었던 “식민지 조선에서는 공식적으로 발동되지 않았다”의 의미가 이영훈의 논문이 근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wikipedia이다. 다른 출전 표시로 수정되어 있지만, 한번 읽으면 할 수 있듯이, 본문은 전혀 수정되지 않았다. 정말로 정혜경 논문이 이 기술의 출전일 수 있는지 의심스러워 원 논문을 찾아보았더니 일단 두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첫 번째로 서지정보가 틀렸다. 책 말미의 문헌 일람에는 정혜경 「근로정신대 지원 조례 제정의 의미와 금후의 과제」(광주광역시의회 주최 『제36회 정책토론회 자료집』, 2012.12)로 되어 있다. 하지만 논문의 정확한 제목은 정혜경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지원의 의미와 금후의 전망」이며, 한국의 광주광역시의회 주최로 2012년 2월에 열린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지원에 관한 토론회에서 보고된 것을 활자화한 것이다(아울러, 이 보고는 광주광역시의회 홈페이지에서 전문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정혜경의 보고 내용은 박유하의 서술의 근거로서는 부적절하다. 정혜경의 보고는 “조선여자근로정신대란, 일제에 의해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의 노동력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에서 다수의 미성년 여성들을 동원하여 노동력을 수탈한 인적 동원을 의미한다. 주로 한반도과 일본 본토로 동원되었다”고 하는 전제하에 전시기 말기 조선인 여성 노동력 착취, 동원과 그 피해상황을 개관하고 지원 조례안에 대해 발언한 것이다. 정혜경은 조선에서는 1944년의 여자근로정신대에 의한 동원이 개시되기 이전부터 공장에 어린 소녀들이 동원되었으며, 방적공장의 평균 연령은 12.4세였고, 10세 이하도 18.9%였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정신대에 의한 동원은 이러한 소녀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를 합법화한 것이었다고 해석했다.

 

정혜경의 보고의 이러한 요지를 이해한 후에 다시 한 번 위의 인용문을 읽으면, 그 출전 표시의 기묘함을 당장 이해할 수 있다. 박유하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근로동원의 확대를 시계열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정혜경의 보고는 그것과는 달리 조선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근로동원을 주제로 한 것이다. wikipedia에 따라 쓴 것을 체제를 갖추기 위해 무리하게 다른 출전 표시로 치환했기 때문에 부적절한 인용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허술함은 본서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해야 하는데, 물론 최대의 문제는 이러한 ‘방법’에 의해 도출되는 박유하의 주장 그 자체이다. 본서는 기본적으로는 이전의 저서 『화해를 위하여』와 동일한 문제점을 계승하였고, 그런 의미에서 『화해를 위하여』에 대한 김부자나 서경식의 비판으로 충분하다. 본래 개별 주장이 각각 성립할지조차 대단히 의심스럽지만, 만약 본서에 『화해를 위하여』와 비교해서 새로운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제목이 되기도 한 ‘제국의 위안부’라는 규정에 드러난 식민지 인식일 것이다. 이것은 논리로서는 조선인 강제연행 부정론이 다용하는 레토릭, 조선인도 ‘제국 신민’으로서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동원되었기 때문에 특수한 ‘조선인 강제연행’ 같은 것은 없다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보다 문제가 뿌리깊은 것은 ‘위안부’ 여성들의 내면을 다양한 자의적인 사료의 접합을 통해 구성하여 흡사 조선인 여성들도 그러한 구도에 납득하고 내면화한 것처럼 주장하는 점이다. 본서에서는 일견 저자가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곳이 있지만, 거기에서 언급되는 ‘제국’의 문제 운운하는 것은 극히 추상적이고 공허한 언사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는 한국병합조약에 대해서는 명확히 합법적으로 성립했다고 언급하고 있으며, 전시동원이나 강제노동과 인도에 대한 범죄의 문제 등도 전혀 논해지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관해서 ‘제국’의 일부였으므로, 그것을 물을 ‘법’이 없다고 반복할 뿐이다. 이러한 전제에 서는 ‘해결’이란 무엇일까, 거기에서 표명되는 식민지 인식이란 어떠한 것일까.

 

일본어판에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이 명료하게 제시된 추가 기술이 있다. 이전에도 언급한 ‘동지’와 관련된 부분인데, 여기에서 박유하는 우선 어떤 ‘증언’을 인용한다. 정대협이 편찬한 증언집에 기록된 “일본 사람한테 나가 압박은 많이 받았지. 압박은 많이 받았지마는, 내 운명인디. 내가 세상을 잘못 만나고 내 운명이고, 나를 그렇게 한 일본 사람을 나쁘다는 소리는 안 해”라는 증언이다. 이 ‘증언’을 박유하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우선은 한글판을 인용하자.

 

“위안부 체험을 ‘운명’이라고 말하는 이는 우리 앞에도 있다. 말하자면 똑같은 가혹한 ‘운명’을 겪고도 그 운명에 대한 ‘태도’는 위안부마다 달랐고, 지금도 다르다. 그런 그녀는 일본군이 아닌 업자를 ‘폭행’의 주체로 기억한다.

혹독한 체험을 한 이들에게도 ‘즐거웠던’ 순간은 없지 않았고, 군인에게 신세타령을 하면서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위안부’도 없지 않았다. 그들은 국가에 의해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지로 이동해야 했던 ‘개미’ 같은 처지임을 서로 민감하게 감지한 고독한 남녀이기도 했다.

물론 거듭 말하지만, 사랑과 평화와 동지가 있었다고 해도 ‘위안소’가 지옥 같은 체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명예와 칭송이 따른다 해도 전쟁이 지옥일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렇다면 더더욱, 그런 지옥을 살아내는 힘이 되었을 연민과 공감, 그리고 분노보다 운명으로 돌리는 자세 역시 기억되어야 하지 않을까.”(75-76쪽)

  

이 해석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언급했으므로 일단 생략한다. 이 부분은 일본어판에서는 아래와 같이 대폭 수정되었다.

 

“위안부의 체험을 ‘운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소설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위안부 중에도 자신의 체험을 ‘운명’으로 간주하는 사람은 있었다. 자신의 몸을 덮친 고통을 수반한 상대를 규탄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말로 용서하는 듯한 그녀의 말은 갈등을 화해로 이끄는 하나의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그녀에게 그녀의 세계 이해가 틀렸다고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은 그녀 나름의 세계 이해 방법을 억압하는 것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말은 갈등을 푸는 계기가 결코 체험 자체나 사죄의 유무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쪽의 이와 같은 자세나 태도는 지금까지 주목되는 일이 없었다. 그 이상으로 위안부와 병사가 공유하는 연민의 감정도 이해되는 일은 없었다. 국가의 억압 속에서 지녔던 공감이나 연민의 기억을 무화시킨 채로 저항이나 증오의 기억만이 계승되어 온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병사나 위안부의 생각이나 말이 이해받지 못해 왔던 것은 그들의 관계를 단순히 대칭적인 것으로 파악해 왔기 때문이다. 기억의 선택에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받아들이는 쪽의 감정이나 감성도 관여하게 된다.”(92-93쪽) 

  

“‘운명’이라는 말로 용서하는 듯한 그녀의 말은 갈등을 화해로 이끄는 하나의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이것은 증언자의 말이 아니다. 저자인 박유하의 말이자 해석이다. 일본어판에서 추가된 이 부분에는 어떤 의미에서는 본서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응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박유하는 미리 “그녀(증언자-인용자 주)의 세계 이해가 틀렸다”는 가짜 비판을 대치시키고 있는데, 여기에서 본래 제기되어 있는 것은, 증언자의 언명이 아니라, 그것을 “‘운명’이라는 말로 용서하는 듯한 그녀의 말은 갈등을 화해로 이끄는 하나의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는 틀에 부어넣는, 그리고 그러한 해석을 일본어권 독자에게만 제시하는 박유하 자신의 ‘세계 이해’이다. 여기에서는 그러한 저자의 책임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증언자의 책임으로 둔갑해 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말은 갈등을 푸는 계기가 결코 체험 자체나 사죄의 유무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지,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피해를 입은 쪽”이 이것은 ‘운명’이라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 왜 “화해로 이끄는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을 증명해야 하는 자는 ‘증언자’가 아니다. 박유하 자신이다.

 

본서에서 필자는 명확히 식민지 지배를 ‘부정의’로 인식하고 이것을 비판, 규탄하는 입장을 포기하도록 조선인 쪽에 요구하고 있다(더욱이 ‘증언자’의 말을 빌어). 그것은 일본인에 대해 ‘제국’ 측으로부터 연민과 동정을 나타낼 것을 재촉하는 듯한 서술과 대응한다. 본서에 대해서는 재빨리 일본에서는 호의적인 소개가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본서의 내용도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누가 어떠한 형태로 호의적으로 소개하는가에 대해서도 함께 주목해야 한다. 본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 대응을 통해 평자들의 ‘견식’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일종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지가쿠인 대학 부교수 정영환)

 

朴裕河『帝国の慰安婦』の「方法」について(2) : 日朝国交「正常化」と植民地支配責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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