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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제국의 위안부』의 ‘방법’에 대하여 (6)

한일청구협정에 의한 경제협력’은 실질적인 보상・배상이었다, 일본군 '위안부’의 청구권은 한국정부에 의해 포기되었기 때문에 과거 '위안부’ 여성들에게 일본정부에 손해배상을 요구할 청구권은 없다. 본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박유하가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지금까지 확인한 바와 같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박유하의 이해에 따르면, '위안부 문제’는 이미 '해결’된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본서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박유하는 반복해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일본정부에게 어떠한 행동을 '기대’하고 있다.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제5장 다시 일본정부에게 기대한다」 중 「1965년 한일협정의 한계」에 대해 한글판 기술도 참조하면서 계속해서 읽어 보자.

 

그 전에 본서를 '읽기’ 위해 필자의 주장의 재구성이나 모순의 지적, 그리고 일본어판과 한글판을 비교대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말할 나위도 없지만, 일본어판 간행 시에 가필이나 수정을 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수정을 하는 것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지금까지의작업은 어쩌면 악의를 가지고 박유하의 주장을 왜곡하기 위하여 지엽적인 문제로 흠집을 내려는 것으로받아들여질지도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 말하면 필자의 주장의 재구성이라는 작업 없이 본서를 '읽는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쪽이 신기하다.

 

논지의 재구성이나 모순의 지적이라는 작업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본래 이러한 전후모순이나 부정합, 자가당착 같은 것은 본서의 결함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국면에서는 본서에대한 비판을 무효화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A와 B라는 상호대립하는 서술이 동거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단순한 결함이다. 하지만 잡다한 정보가 미정리 상태로 담겨져 명료함을 현저히 결여한 경우에 A 비판에 대해서는 “B라고 기술하기도 했다”고 반박하고 B 비판에 대해서는 “A라고 기술하기도 했다”고 반박하는 것으로 마치 반비판을 하고 있는 듯한 외관을 가장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본서는바로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본서가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는 책이라고 '오해’받고 있는 것도 이러한 결합에 기인한다. 개별 문장이나 단락 단위에서 보면 확실히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는 듯한 기술은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후의 맥락과는 명백히 모순되는 형태로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일본어판은 처음부터 이러한 변명들을 의도해서 삽입된 것으로 보이는 기술이 많으므로 특히 이러한 작업이 요구되는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본서는 독자에게 터무니없는 부담을 강요하는――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어지는 것은 극단적으로 적은――놀랄 만한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판과의 비교 대조가 필요한 것도 이 점과 관련되어 있다. 일본어판 간행 시의 가필・수정에 의해 그렇지 않아도 명석함을 결여한 본서의 혼란함에 한층 박차가 가해진 것이다. 일본어판에는 명확히 모순된 기술이 산견하여 필자의 주장에 대한 찬동 이전에 논지를 해독하는 것 자체에 곤란함을 느끼는 경우가 가끔있다. 그 원인의 하나는 일본어판 간행 시의 가필・수정 때문이다. 이 가필・수정에는 논의 전개상 필요성이 없는 변명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이 많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본서의 논지 자체를 붕괴시켜 버린다. 다만그런 탓에 일본어판 가필 부분이 본서의 의도를 드러내는 기능을 하고 있어, 그러한 의미에서도 양자의 비교 대조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애당초 박유하가 말하는 '한일협정의 한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일교섭은 식민지지배를 “공식적으로는 문제 삼지 않았”던 회담이었기 때문에 조약에 “'식민지 지배’나 '사죄’나 '보상’이라는 표현”이 없으며, 이로 인해 “명목은 보상과는 관계가 없는 듯한 것이 되었다”는 것(247쪽)이다. 따라서 '경제협력’은 “'전후’ 보상”이기는 했지만, “'제국 후’ 보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한 이해의 전제에 감춰진 문제점에 대해서는 앞의 기사에서 지적했는데, 한일회담이 식민지 지배 책임을충분히 추궁하는 장이 되지 못했고, 한일 제협정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 책임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사실이다(이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애당초 “'전후’ 보상”조차 되지 못했지만).

 

그렇다면 박유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일본정부에 기대”하는 것일까. 여기에서는 단락 번호를 붙여 되도록 박유하의 주장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경제협력’이 어디까지나 “전후’보상에 지나지 않았다”(오류이지만)는 비판에 아래의 단락이 이어진다(이하 강조는 모두 인용자).

 

【1】“그러한 의미에서는 일본은 1945대일본제국 붕괴 식민지화에 관해 실제로는 한국에공식적으로 사죄한 일은 없다. 양국 수뇌가 만날 때마다 사죄를 해 왔고 그에 대해서는 더욱더 한국에 알려져야 하지만, 그것은 실로 애매한 표현에 의한 것밖에 되지 못했다. 1919년 독립운동 때에 살해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동대진재 때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제국일본의 방침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혀 가혹한 고문 끝에 목숨을잃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한 번도 공식적으로는 구체적으로 언급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온 것이다.”(251쪽)

 “양국 수뇌가 만날 때마다 사죄를 해 왔고 그에 대해서는 더욱더 한국에 알려져야 한다”는 주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은데, 박유하의 논리를 아는 입장에서 보면, 병합’ 100년 때의 간나오토(菅直人) 담화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약간 기묘한 느낌도 들지만――“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여기에 다시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라는 표현은박유하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제대로 사죄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는 이론은 없다. 하지만 바로 다음 단락이 나타나 논의의 줄거리가 무산된다.

 

【2】“다만, 동일한 경우에 처한 일본인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사죄나 보상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물론 그것은 치안유지법 등, 당시의 체제 비판을 통제할 수 있는 법률에 입각해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적어도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게 된다.”(251쪽)

 이 “동일한 경우”라는 것은 【1】의 “제국일본의 방침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혀 가혹한 고문 끝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지만 【1】의 취지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보상이 없다는 것이고 그 구체적인 사례로서 민족독립운동에 대한 탄압이 서술되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는 갑자기 그 구체적인 사례 부분을 들어서 “동일한 경우”의 일본인의 화제로 분기하기 때문에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식민지 지배 책임 이야기를 하는지, 일본인도 포함한 치안유지법에 의한 인권침해 이야기를 하는지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여기에서 나아가 화제는 한국으로 옮겨진다.

 

【3】“그러나 한국에서는 2000년대 이후에 한국에서 국가가 자행한 부당한 인권탄압에 대해 진상규명’을 하는 작업을 통해 보상을 시행했다. 그리고 1965년 협정에 의해 개인 피해자에게 보상은 했지만, 그때 누락된 사람들도 포함해서 당시의 금액이 너무 적다는 판단에서 추가보상도 실시하고 있다. 미국도 전후에 배일이민법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시행한 적이 있다. 국가가 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일본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타국에 대해국가가 자행한 인권피해를 보상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그때의 국가에 대한 저항’은 그 국가주체가 타민족인 이상 필연적인 저항이었다.”(251-252쪽)

 본서의 내용에서 보면 극히 이질적인 단락이다. 본서에 보이는 박유하의 주장과의 정합성이 의심스러운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음 단락에서 드디어 본론인 “일본정부에 기대”하는 것을 논하는 단락에 이르면 갑자기 어조가 누그러져 그때까지의 논지로 복귀한다.

 

【4】“일본의 경우에 국내에 대한 책임은 침략전쟁 자체에 대한 인식에서 의견이 대립해 있으므로 간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원래대로라면 말려들지 않아도 되었던 타민족 여성――조선인 위안부들이 자발과 타의에 의한 동원’을 당해 일본군의 사기를 고양시키는 역할을 강요당하며 고통의 나날을 보낸 것에 대해 일본국가는 어떠한 의미에서라도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그리고 그것을 직접 받아들일 수 있는 생존자는 극히 소수가 되었다.”(252쪽)

 “어떠한 의미에서라도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위를 가리키는지(가리키지 않는지)를 검토하기 전에 여기에서 한글판 기술을 확인해 두자. 이 부분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말하자면 일본은 1945년에 제국이 붕괴하기 이전에 식민지화’했던 국가에 대해 실제로는 공식적으로 사죄・보상하지 않았다. 조선 조정의 요청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식민지화 과정에서의 동학군의 진압에 대해서도, 1919년의 독립운동 당시 수감/살해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간토関東 대지진당시 살해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 밖에 제국 일본’의 정책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옥되거나 가혹한 고문 끝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는 단 한 번도, 구체적으로언급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인 위안부’들은 국민동원의 한 형태였다고 볼 수 있지만,제국의 유지를 위한 동원의 희생자라는 점에서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배의 희생자다.”(262쪽)

 일본어판 【1】~【4】는 이 한글판의 한 단락을 늘어뜨린 것이다. 일독하면 알 수 있듯이, 한글판 서술은 극히 심플하다. 물론 왜 동학군에 대한 탄압이나 관동대진재 때 조선인 학살 등이 “제국의 유지를 위한 동원의 희생자”인지는 잘 알 수 없는 등, 불명료함과 허술함은 있다. 다만 식민지 지배의 희생’ 이야기라는 점은 일단 유지되어 있다.

 

하지만 일본어판에서는 동학에 대한 언급은 삭제되었고 대신에 “동일한 경우에 처한 일본인”이나 한국・미국에서의 보상 이야기가 삽입된다. 이에 따라 사죄나 보상을 둘러싼 주체간의 관계성도 【1: 국제】→【2: 국내】→【3: 국내에서 국제】→【4: 국제】로 현란하게 이동한다. 논의 전개의 편의에서 보아도명확히 【1】→【4】로 이야기는 통한다. 【2】【3】은 불필요하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3】에 기술되어 있는 것이 명확히 본서의 논지와 모순된다는 것이다. 【3】에서 박유하는 행위가 이루어진 시점에서 합법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국가의 과거 행위의 책임을 묻는것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구체 사례로서 한국에서 있었던 과거사’ 청산이나 미국에서 있었던일본계 강제수용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든다. 말할 나위도 없이 한국정부나 미국정부가 행한 보상은 민간의 모금이 아니다. 만약 【3】의 경우와 같은 사례가 위안부’ 여성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보상의 모델이라고 한다면, 국민기금을 거부한 당사자들이나 정대협을 비판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하지만 본선에서 박유하는 국가보상과 책임추궁을 요구하는 지원단체’를 반복해서 비판한다. 재판할 법이 없다는 이유에서 일본의 법적 책임을 부정하고 행위가 이루어진 시점에서 합법이라는 것을 중시한다.【2】는 【3】에게 부정되기 위해서 호출된 주장인데, 본서에서 박유하가 주장하는 것은 바로 【2】의 논리이다. 서두의 걱정은 이 부분을 상정한 것이다. 논지는 명확히 【2】인데도, “나는 【3】과 같은 것도기술했다”고 반론’도 함으로써 비판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안되지만, 일본어판에서 삽입된 【3】은 명백히 본서의 논지와 모순된다. 실제로 【3】의 경우나 논리는재고되지도 않은 채 일본어판은 다음과 같이 논의를 전개한다.

 

【5】“그렇기는 해도, 일부 학자가 주장하듯이, 한일협정 자체를 흔드는 것은 너무나도 문제가복잡해진다. 그것은 학술적・법적・정치적 논의가 될 수밖에 없고 그러한 논의는 지금의 관계를근저에서 무너뜨리는 것이므로, 양국 관계를 현재 이상으로 파괴해 버릴 것이다. 협정을 일단 지키는 것은 단순히 국가간의 약속이니까 지킨다는 형식적인 의미 이상의 의미가 있다.”(252쪽)

 즉 한일협정을 개정해서는 안 된다고 박유하는 주장하는 것이다. 이유로서는 거의 “안 되니까 안 돼”라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조금 더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하고 있는 한글판 기술도 보아 두자.

 

“그렇다고 해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한일조약 자체를 깨고 재협상하는 것이 꼭 최선의 해결책은아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로서의 신뢰는 깨질 수밖에 없다. 또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한일합방이 일본의 국민이 되겠다고 한 약속이었던 이상 위안부’ 동원을 법적’으로 문세삼을 수도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국가가 합의한 개인의 권리’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간주하게 되면 당시 조선에 재산을 남기고간 일본인들의 청구권 문제에도 한국이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263쪽)

 

본서에서 한일교섭을 논할 때의 박유하의 역점은 얼마나 한국정부가 식민지 지배 전체의 보상을 요구하지않았는가에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한국정부는 식민지 지배 전체에 대한보상을 요구하라고 해야 한다(독자도 그러한 전개를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박유하는 너무나도 간단히 그러한 주장을 버린다. 더욱이 “문제가 복잡해진다” “국가로서의 신뢰가 무너져 버린다”는 이유로. 바로 앞의 기술에서 “국가가 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하여 한국의 과거사’청산 예를 든 인물이 말이다. 그리고 박유하는 이렇게 주장한다.

 

【6】“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보는 이며, 그런 후에 한계를 극복할 있는 길을 찾는 이 아닐까.”(252쪽)

【7】“일본은 개인에 대한 법적 책임은 다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시대적 한계를 검증하고 보충하는 이야말로 후예들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252-253쪽)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보는 것”이란 무엇일까.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안 된다. 【7】은 얼핏 보면, 식민지 지배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일본이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것’은 명확히“개인에 대한 법적 책임을 다했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식민지 지배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일본정부는 다하지 않았다고 박유하가 기술하고 있는 것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법적 책임을 다하라”는 주장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한계라는 말을 가지고 나와 추궁하는 것 자체를 멈추고 만다. 한글판도 봐 두자.

 

“지금 필요한 것은 한일협정은 또 하나의 제국이었던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체제하에서 이루어진탓에 식민지배에 대해 철저하게 되물을 기회를 한일 양쪽에 주지 않았다는 점을 인식하는 일이다.(262쪽)

 드물게 한글판 쪽이 심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교섭 시에 일본정부는 전력을 다해 식민지 지배 책임을부정했다. 누군가에게 강요당한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애초에 이 글에는 “식민지배에대해 철저하게 되물을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자가 누구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미국 탓으로 일본이 식민지 지배 책임을 다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읽히는데, 엄밀히 말하면 미국의 책임이라고 쓰고 있지도 않다.굳이 말하면 냉전체제’가 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앞의 기사에서 본서에서는 구조’와 같은말이 주체를 면책하는 문맥에서만 사용된다고 지적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냉전체제’라는 말도 동일한기능을 다하고 있다.

 

아직 박유하가 “일본정부에 기대”하는 것은 알 수 없다. 이어지는 단락을 보자.

 

【8】“최근에 서양의 제국이었던 나라들도 과거 식민지였던 지역에 대해 사죄를 한 것이 보도되었다. 이탈리아는 리비아를 1912년부터 1943년까지 지배한 것에 대해 고통을 주었다’고 사죄했고 영국도 아일랜드에 대해 여왕이 사죄했다.”(253쪽)

 따라서 일본정부도 그렇게 하라고 기대’하는 줄 알았더니 그렇게 되지 않았다.

 

【9】“다만 일본도 애매하기는 하지만 식민지 지배에 대한 천황이나 수상의 사죄는 있었다. 그 후에 위안부 문제에 한한 것이기는 했지만 보상도 했으므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사죄’는 실은 과거제국 중에서 가장 구체적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시아여성기금은 네덜란드에 대해서는법적으로 종결된 전후 처리를 더욱 보상한 것이고, 한국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는 식민지 지배후처리’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253쪽)

 일본정부가 해 온 것은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진전되어 있다는 것이다(【1】에서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일은 없다”고 썼을 터이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일까.

 

【10】“그러나 그때의 처리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어디까지나 전후 처리’(게다가 법적으로는하지 않아도 되는 것)라고 생각되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사죄와 보상’이 식민지 지배후 처리’라는 것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의식도 하지 않았거니와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1】“더욱이 그것은 어디까지나 애매하고 비공식적으로 행해진 사죄에 지나지 않았다. 공식적인 창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공식적인 장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과거에 대한사죄가 한국인에게 기억될 기회도 거기에서는 상실되었다.”(253쪽)

 국민기금의 의의를 명확히 부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일단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기금은 정말로 “실질적으로는 식민지 지배후 처리’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을까. 애초에 “의식도 하지 않았거니와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은 것이 왜 “실질적으로는 식민지 지배후 처리’의 의미를 가진다”고 할수 있을까. 중요한 물음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라는 말을 기적을 부르는 말로 사용함으로써 논의를 전개할 때 반드시 논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정을 생략하고 있다. 워프 항법이라고 할 만한 이 기적을부르는 말을 사용한 논증 생략의 방법’은 이전에 경제협력’의 부분에서도 보았듯이, 자주 본서에서 박유하가 사용하는 것이므로, 본서를 읽을 때는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자. 이 장 「다시 일본정부에 기대한다」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맺어져 있다.

 

“진정한 긍지는 책임을 인정하고 남겨진 문제를 마주하는 것에 있을 터이다. 그런 편이 한국뿐만아니라 세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국가나 제국이 인간에게 초래한 불행에 대해 현재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지금의 일본국가에 묻고 싶은 것이다. 그 내용이 세계가 공유할 만한새로운 가치’가 된다면 멋질 것이다.”(260쪽)

 결국 한일협정의 한계’와 관련하여 박유하는 일본정부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확실히 하지 않았다.“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볼 것” “시대적 한계를 검증하고 보충할 것” “냉전체제” 하에 “식민지 지배에 대해 철저하게 되물을 기회를 한일 쌍방에게 부여하지 않은 것을 인식할 것” 등의 애매한 레토릭이열거될 뿐이다.

 

다만, 박유하가 일본정부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만은 명확하다. 과거의 위안부’ 여성들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식민지 지배 당시에는 책임을 물을 법’은 없었으며, 한일협정에 의해 법’은 없어졌기 때문이다(모순이지만). 한일협정에 따른 분쟁 해결도 하지 않아야 한다(헌법재판소 결정 비판), “한일 관계를 악화시켰을 뿐”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명확히 드러난 현재의 입장에서도 법’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한일협정 재협상 비판), “문제가 복잡해진다” “국가로서의 신뢰가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박유하에 따르면 해야 할 것은 이것들 이외의 일이다.

 

(정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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