読者です 読者をやめる 読者になる 読者になる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의 ‘방법’에 대하여(7)

이전의 기사에서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의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비판이 선행 연구의 오독과 왜곡에 기초한 근거 없는 것임을 지적했다(「박유하 『제국의 위안부』의 ‘방법’에 대하여(4)」). 이 기사를 집필했을 때 생략했던 또 한 편의 논문의 오독에 대하여 보족으로 지적해 두고자 한다.

 

「한국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읽다」에서 박유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강조는 인용자).

 

"소송자들(헌법심판의 청구인: 인용자 주)은 위안부는 매춘이 금지되어 있던 당시의 법규에 위반했으므로, 위안소 운영이 불법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법 전문가인 아이타니 구니오(藍谷邦雄) 변호사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중략)

 즉, 설령 위안부 제도에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손해배상의 근거로 직결되지 않으며, 미지불 '(강제)노동'이 있었다면 그것에 대한 보상은 가능하다고 한다. 설령 인신매매를 일본국가 주도로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피해자 단체는 1965년의 조약에 의해 '보상'은 끝났다는 현실에 대해 한일의 법이 아니라, 국제법상의 법규를 적용하려고 해 온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것도 '법적'으로 일본을 추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정대협이 주장하는 법적 배상의 근거는 없는 것이 된다."(193∼195쪽)

 

 박유하가 근거로 삼은 논문은 아이타니 구니오의 「시평 ‘위안부’ 재판의 경과와 결과 및 그 후의 동향」(『歴史学研究』849, 2009. 이하 아이타니 논문)이다. 이 부분을 있는 그대로 읽으면, 아이타니 구니오가 일본정부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제법에 기초하여 "'법적'으로 일본을 추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독자는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이타니 논문의 주장은 박유하의 주장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아이타니 논문의 과제는 제목에도 있듯이, 1990년대 이후의 '위안부' 재판의 경과를 회고하며 특히 재판에서 문제가 되었던 쟁점을 소개하는 데에 있다. 박유하가 참조한 것은 그 중에서 국제법을 둘러싼 쟁점을 정리한 「3 국제법에 의한 주장에 대하여」이다.

 

 아이타니는 국제법에 기초한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1)배상의 근거와 (2)위법성의 근거로 나누어 각각 검토한다. (1)에 대해서는 헤이그 평화회의 및 ILO의 강제노동금지조약을 들어 각각이 손해배상책임 및 위법한 강제노동에 대한 보수를 지불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국가무답책(国家無答責: 전시중의 국가권력의 불법행위로 인한 개인의 손해에 대해 국가는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주장-역자 주)이 없고 시효, 제척(除斥) 기간도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원고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음을 소개한다. (2)에 대해서는 '여성 및 아동의 매매금지에 관한 국제조약'을 들어 "국제법상으로도 '위안부' 제도를 위법행위로 인정해야 하는 근거라는 점에 논쟁의 여지는 없었다"고 평가한다. 다만, 이 조약은 어디까지나 위법성의 근거이므로, "이 조약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박유하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근거는 아이타니 논문의 이 부분이다. 박유하는 일부러 강조하며 "이 조약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라는 아이타니의 지적을 소개하고 위와 같이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아이타니 논문은 '위안부'에 대한 손해배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여성 및 아동의 매매 금지에 관한 국제조약'은 위법성의 근거이므로, 배상에 대해서는 다른 법규에 의해서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또한 인용문 제1단락에서는 마치 아니타니 논문이 '위안소 운영이 불법행위'라는 주장을 부정하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으나("위안소 운영이 불법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법 전문가인 아이타니 구니오 변호사는…"), 이 논문은 '불법행위'임을 부정하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아니타니 논문은 국제법에 의한 주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④헤이그 조약, ILO조약에 기초한 주장에 대해서는 국가는 이하의 반론을 했다. 조약은 국가와 국가의 약속이며, 그 권리를 정할 수 있는 것은 국가에 한한다. 개인은 국제법의 법적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조약들을 근거로 청구권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로 법원도 거의 국가의 이 주장을 인정하여 국제법에 의한 청구를 하나도 용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논의의 과정에서는 개인의 국제법상의 법주체성으로 논의되어 (중략) 국제법의 이론적 심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최근의 다양한 인권조약에서는 개인의 국제법상의 법주체성은 당연시되는 데까지 심화되었다."(36쪽)

 

 즉 아이타니는 헤이그 조약 및 ILO조약에 기초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하여 국가는 개인이 국제법의 주체가 아니라는 논법으로 배척해 왔으나, 최근의 인권조약은 "개인의 국제법상의 법주체성을 당연시"하기에 이르렀으며, 국가의 논법은 이러한 국제법의 발전에서 일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유하가 말하듯이 일본정부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등의 주장을 한 것이 아니다. "정대협이 주장하는 법적 배상의 근거는 없다"는 주장의 근거도 될 수 없다.

 

  「3 국제법에 의한 주장에 대하여」는 네 파트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 번호가 붙어 있는데, 박유하는 그 중의 ①②③만을 소개하고 왠지 3절의 결론에 해당하는 위의 ④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 결과 ③의 말미의 위법성의 근거이므로 배상에 대해서는 다른 법에 의해서 주장해야 한다는 의미의 "이 조약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는 한 구절이 마치 3절의 결론인 것처럼 독자에게 제시되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박유하의 주장의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반복하지만, 아이타니 논문은 이러한 주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도 박유하는 논문의 취지와는 완전히 반대 주장의 근거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아이타니 논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2007년 4월 27일 대법원 판결은 '위안부' 소송뿐만 아니라 앞에서 기술한 니시마쓰 건설(西松建設) 사건에서도 완전히 동일한 판결이 되었다. 이 판결의 부언 중에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틀에서도 개별 구체적인 청구권에 대하여 채무자 측에서 임의의 자발적인 대응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바, 본래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극히 컸다 ……, 상고인(피고)을 포함한 관계자가 본건 피해자들의 피해 구제를 향한 노력을 할 것이 기대되는 바이다"라고 언급하는 것은, 판결의 결론으로 말하면 당연한 것으로, 앞으로 새로운 입법에 의해 피해 회복을 기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기대된다. 과거에는 새로운 피해회복입법은 샌프란시스코조약의 틀을 붕괴시키므로 불가능하다고 하여 그것이 아시아여성기금('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으로 이어진 나쁜 법해석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 대법원의 법리는 이러한 나쁜 법해석의 폐해를 고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을 행할 것을 당연시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평화조약에 의해 피해자의 재판상의 청구권을 모두 부정하는 것 자체는 승복하기 힘든 점이 있는데, 재판상의 청구에서 입법에 의한 피해회복으로의 전기가 된다고 생각하면, 이 대법원 판결은 새로운 피해회복 청구의 지평을 쌓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38쪽)

 

 즉 최근의 판결 법리는 "아시아여성기금('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으로 이어진 나쁜 법해석"을 고칠 가능성을 지니며, 오히려 "새로운 피해회복입법"을 요구할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아이타니 논문의 결론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새로운 피해회복입법"이 '아시아 여성기금'과는 전혀 다른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영환)

 

 

메이지가쿠인 대학 부교수 정영환

 

원문: 朴裕河『帝国の慰安婦』の「方法」について(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