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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해방 투쟁을 왜소화하려는 전략(마에다 아키라씨 『제국의 위안부』 서평)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아사히신문출판)

『사회논평』169호(2015년 4월)에 게재

 

1. 뒤틀릴 대로 뒤틀린 프로젝트

 

  찬반양론이 나뉘는 책이다. 찬성 혹은 지지하는 논자 중에 일본이 도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측과 ‘위안부' 문제따위는 없었고 일본에 책임은 없다는 측 양자가 포함되어, 기묘한 동상이몽 상태가 생겨 버렸다. 비판하는 논자들의 관점도 다양하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제기'적인 저작이다.
  이 책은 서평하기 어려운 책이다. '위안부' 문제로 뒤틀려버린 한일관계를 한층 더 심화시킬 목적으로 썼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가해국-일본의 남성인 평자가 피해국- 한국의 여성의 책을 비판하더라도, 뒤틀림이 해소되기는커녕 양상만 복잡해질 뿐이고 생산적이지 않다. 그래도 서평을 시도하는 이유는, 일본 측 사정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우선 2014년 8월 『아사히 신문』 기사 정정에서 비롯된 일련의 소란으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혼란을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일부라고는 해도 본서 예찬이 상식의 선을 일탈했기 때문이다.
  일본 측 사정이 바뀌었으니까 서평한다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본서는 2013년 8월에 한국에서 출판된 저작의 일본어판이라고 선전 중인데, 원래는 일본어로 <WEBRONZA>에 연재되던 글에서 출발했다. 처음부터 일본 측을 겨냥한 메시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본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직접적으로 일본 독자들에게 던져진 것이다. 한일 쌍방을 오가며 안 그래도 꼬인 문제를 굳이 더 비트느라 분투하는 저자의 프로젝트는 과연 무엇일까.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아울러 평자의 인식에 관해서는 『'위안부' 공격을 넘어서』 (大月書店), 『‘위안부’·강제·성노예』(御茶ノ水書房), 『일본인 위안부』(現代書館) 참조.

 

 

2. 다듬어진 방법론의 특징

 

  본서의 방법에는 여러가지 특징이 있다. 웹 연재, 한국어판을 거쳐 다시 일본어판으로 정리된 경위부터가, 본서가 채용한 방법이 의식적 자각적으로 선택되어 다듬어진 것임을 말해준다. 그 방법론적 특징을 확인해보자. 아래 열거하는 방법론적 특징은 각각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서로 보완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선은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서사화'이다. '제국의 위안부'라는 표상이 '전쟁범죄의 희생자=생존자'라는 표상에 대한 비판으로서 제시되고, '위안부'답게 적극적으로 살았던 '주체'가 가공된다. 그로 인해 ‘주체의 서사’만 선정되어 저자의 논지에 맞지 않는 서사는 잘라낸다. 저자는 센다 가코(千田夏光)의 『종군위안부 "목소리 없는 여자" 8만명의 고발』(1973)에 의거하여 센다가 '위안부'를 '애국'적 존재로 이해했다는 사실을 발굴한다. 거기에 '위안부' 증언 중에서 논지에 유리한 서사를 이어 붙여 간다.
  여기에 본서가 말하는 '기억의 투쟁'의 특수한 의미가 명확해진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표상을 전면 비판한다. '위안부'를 이용하고 억압하며 전후에는 전쟁터에 방치하고(경우에 다라서는 살해하며), 전후에도 침묵하게 만든 남성중심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위안부' 이미지의 강요, 역사의 부인과 기억의 말소를 꽤해 온 일본국가와 일본 남성(남성적 가치관을 공유해 온 여성도 포함)에 의한 '기억의 소거'에 저항하며,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각지에서 일본국가의 책임을 추궁하는 '주체'로서 등장한 '위안부' 피해자=생존자들. 이와 같은 종래의 인식틀을 부인하는 것. 이것이 본서의 전략목표이다. 기억을 소거하고 점유하려는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피해 여성의 '기억의 투쟁'은 무화된다.

  본서는 '피해자' 이미지를 강조해 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등의 보상요구 운동을 통해 구축된 '기억'에, '애국'을 위해 살았던 여성들의 '기억'을 대치시킨다. 이로 인해 두 가지가 가능해진다. 첫 번째는 '기억'의 억압이 일본국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상 요구 운동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묘사한다. 그 결과로서 일본국가위 책임을 해제하는 교두보를 확보한다. 두 번째는 서로 다른 '기억'을 갖는 여성들의 ‘기억의 투쟁’을 주된 전장으로 삼음으로써 아래에서 언급하는 ‘상대화’를 초래한다.

둘째로, ‘상대화’이다. '성노예인가 매춘부인가', '강제연행인가 국민동원인가' 라는 양자택일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어느 한 쪽으로 결론짓는 것이 목적도 아니다. 양자택일을 제시하면서, 쌍방에 일단의 근거가 있다고 하면, 저자의 논술은 '성공'을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로 인해 저자는 개념 정의도 하지 않고, 판단 기준도 제시하지 않는다. 정의나 기준을 명시하는 것은 자살행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저자는 ‘법=권리(Recht)’를 부인한다. ①국내법이든 ②국제법이든, 저자가 지나가는 곳은 멋지게 잘려나가 잔해만이 가로놓인다. ①국내법의 측면에서 보면, 지금껏 수도 없이 지적되어 왔듯이, 식민지 시대 한반도에 적용되었던 일본형법에는 국외 이송 목적 유괴죄 규정이 있었다. 제국의 밖으로 데려갈 목적으로 자행된 유괴인데, 한반도에서 유괴되어 인신매매된 여성의 사건에 적용되었던 형법 제226조를 일본정부는 적용하지 않았다. 적용하지 않기 위해 국가적 노력을 쌓아갔다. 저자는 그것을 잘 알고 있을 터인데도 경시한다. ②국제법의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1910년의 백색노예조약(추업조약), 1926년의 노예조약, 국제관습법으로서의 노예 금지, 1930년 강제노동조약, 그리고 인도에 대한 죄 등이 논의되어,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도 ILO조약 적용 전문가위원회에서도 일본정부의 책임이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저자는 내용을 검토하지도 않고 '일본에 법적 책임은 없다'고 단정한다. 정의도 기준도 검토하지 않지만, 결론만은 명쾌하다. ‘법=권리(Recht)’의 부인은 철저하여, 이념이나 규범이 빈사상태에 놓인다.

  법을 부인하는 배후에는, 식민지 시대 제국이 멋대로 제정한 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법에도 위반되어 있었던 것이 내외적으로 확인되어 있는데도, 그것은 중시되지 않는다. 또한 당시의 법은 법으로서 거기에 인권론을 읽어내는 법률가의 노력이 축적되어 왔는데도, 전혀 고려하려고 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법 회의주의'이다.

  하지만, 노예조약을 단순한 '제국의 법'으로 특징지울 수는 없다. 노예조약에 이르기까지 백년 이상 노예 해방을 요구해 온 민중의 투쟁이 있었다. 카리브 지역 민중에 의한 독립운동과 노예해방운동(아이티 혁명, 그레나다 혁명 등)을 비롯하여, 각지에서 성과를 올렸다. 마지막에 미합중국의 노예 해방으로 이어져 국제연맹에서 노예조약이라는 결실을 맺은 것이다. '제국'에 저항하는 민중이 새로운 '법'을 형성하는 운동의 메커니즘이야말로 중요하다. 하지만 '위안부'는 제국을 좇아 '애국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본서의 테제에 부적합한 진실은 소거된다.

  셋째로 ‘주관화’이다. ‘서사화’와 ‘상대화’에 호응하여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주관화’이다. '위안소' 정책의 역사나 배경, 그 객관적 사실과는 별도로, '위안소'에 놓인 여성들의 체험은 주관적으로 '기억’되고 '증언'되어 왔다. 그러한 증언들을 다시 객관적 상황에 비추어 위치를 정하고, 그 의미를 검증하는 것이 역사학의 역할이다. 그러나 본서에서의 ‘주관화’는 주관적으로 구축된 서사의 절대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주관과 기억을 근거로 객관적 조건을 '상대화'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개별적인 여성의 생각이 역사 인식의 근거로 여겨진다. 다무라 야스타로(田村泰次郎)、후루야마 고마오(古山高麗雄) 등 일본인 남성 작가들이 쓴 소설이 근거가 된다. 이것을 지적해도 비판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처음부터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으니, 소설에 의거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넷째로 ‘분단’과 ‘개별화’이다. 저자에 의해서 ‘주체’는 '타자에 의해 쟁탈전이 펼쳐져야 하는 전장'으로 변용된다. ‘기억의 투쟁’은 '주체를 둘러싼 투쟁'으로 이행하여, 균열과 분단만이 필드를 덮는다. 이 필드에서 저자는 부글대며 차오르는 증오를 담아서 정대협을 규탄한다. 정대협이야말로 역사 인식을 왜곡한 원흉이고 운동 방침을 그르친 어리석은 자들이며, '실질적'으로 사죄한 일본정부를 근거도 없이 비난해 해결의 실마리를 놓친 책임자이며 피해 여성을 이용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한다.
  저자의 논리는 명쾌하다. 일본정부를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도 정대협은 그것에 실패했으므로 운동을 실패로 빠트린 책임이 있다. 저자는 피해 여성들에게도 각자 다양한 의견이 있다며, 피해자의 요구를 분단시키면서 피해자와 '피해자를 이용'하는 정대협을 분단해 간다. 한국의 피해 여성과 아시아 각지의 피해 여성도 분단된다.

  정대협의 논리는 유엔 인권위원회에 받아들여졌고, ILO위원회에 받아들여졌고, 일본의 전후보상운동에도, 타이완과 필리핀의 피해자 단체나 지원자에도 받아들여졌으며, 2007년에는 미국, EU 등 세계 각국의 의회나 정부에도 받아들여졌다. 그만큼의 지지를 얻은 것은 보통 그 논리가 바르다는 방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본서에 의하면, 일본정부를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정대협의 실패는 명백하다. 즉, 일본정부가 절대적인 판단기준이 되며 이와 다른 판단을 한 전세계가 모두 잘못되어 있다.

  비판적 독자들이라면 이 ‘주체의 쟁탈전’에 참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본서 한국어판에 대해 피해 여성들이 명예훼손에 해당된다고 하여 출판 금지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제소했는데, 저자는 “원고는 위안부 분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며, 피해 여성의 주체성을 저자의 편의에 따라 정형한다. 분단선을 그을 권리는 저자에게 있다. '실질적'이나 '본질'을 정하는 것도, 누가 주체가 되느냐도 저자의 권한으로 결정된다.

  이리하여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일본인 남성들의 서사가 시작된다. '아사히 문화인'이 환호성을 지르며 본서를 환영하고, 저자를 한나 아렌트에 비견하는 기상천외한 해석이 등장한다. 90년대에 지식인이라 자칭했던 사람들이 국가와 일체가 되어 설립한 ‘아시아여성기금’을 절찬하는 저자는, '남성 지식인'들의 '여신'으로 군림한다. 동시에, 일본의 책임을 완전히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자들, 식민지주의로 돌변한 논자들도 기립박수를 치며 환영한다. 『화해를 위해(和解のために)』의 전례로 보아도, 저자 자신도 충분히 예측했을 현상이다. '본서가 우익에 이용'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언급한 논자가 있으나, 이는 적절치 않다.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주체적으로 확실한 자신감을 가지고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상대화’나 ‘주관화’와 결부된 ‘개별화’가 훌륭히 맹위를 떨친다. 개별 '위안부' 여성들에게는 각자의 생각이 있고, 기억이 있고, 투쟁이 있기 때문에 일반화를 거부할 권리도 있다. 그러나 역사 인식이나 국가책임을 묻는 필드에서 '개별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피해자들의 생각이나 기억이 전부 같을 수는 없다. 구유고의 민족 정화나 르완다 제노사이드의 와중에서도 사람들의 생각은 한없이 다양했다. 따라서 일반화하지 않는다면 역사도 국가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된다. 개별적 기억을 축적하면서 얼마나 일반적 인식을 형성하고 공유하느냐가 중요하다.

 

 

3. 분단의 저편에서 다시

 

  본서의 특징은 정당한 지적이 부당한 귀결을 낳는 곡예적인 사고회로에 있다. 예를 들면, '위안부' 강제의 직접 실행자가 주로 민간업자였다는 것은 상식적인 인식으로 진실이다. 그러면 민간업자의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는데,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민간업자를 끄집어내는 것은 오로지 일본정부의 책임을 해제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본서는 '위안부' 문제를 전쟁범죄로부터 분리시키고, 식민지 지배의 문제로 치환한다. 식민지배든 점령지든 교전지든 군사 성폭력이 횡행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식민지이기 때문에 '위안부' 정책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 한해서 본서도 옳다. 그렇다면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식민지에 협력한 '애국적' 노력을 권장하기 때문이다. 식민지의 현실을 살기에 ‘애국적'으로 식민지 지배에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체험과 기억을 근거로 역사를 재단한다면, 카리브해에서도 알제리에서도 나미비아에서도, 세계는 '좋은 식민지'로 뒤덮히게 된다.
  ‘법’을 부인하는 본서는 '인도에 대한 죄로서의 성노예제'에 대한 법적 고찰을 제쳐두고, 식민지 해방 투쟁의 이론과 실천이나, 유엔 국제법위원회에서 심의된 '식민지 범죄'론이나 인종차별 반대 더반(Durban) 세계회의에서 논의된 '식민지 책임'론도 탈색시켜 버린다.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묻는 법 논리가 등장하지 않는다(인도에 대한 죄에  대하여 前田朗, 『人道に対する罪』, 青木書店).

  '위안부' 문제를 한일관계로 한정시켜 ‘정대협때리기’에 몰두해도, 문제해결을 요원하게 할 뿐이다.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인도에 대한 죄나 전시 성폭력과 싸우는 세계 민중의 법 사상은 ‘위안부’, 구유고, 르완다, 시에라레오네, 콩고민주공화국,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의 현장에서 엄청난 희생과 끝없는 슬픔에 잠식되고 농락당하면서도 서서히 단련되어 왔다. '위안부' 문제의 법적 해결이 주요한 판례가 될 것이라 기대하며, 세계를 갈라 온 분단의 저편에서 사람들이 다시 만나기 위해 사죄와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운동은 더 큰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前田朗Blog: 植民地解放闘争を矮小化する戦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