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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로서의 일본 전후사?: 성명 「전후 70년 총리 담화에 대하여」의 문제

“국제정치학자나 역사학자 등 74명”(대표 오누마 야스아키, 미타니 타이치로)이 7월 17일에 성명 「전후 70년 총리 담화에 대하여」를 발표했다(朝日新聞 2015년 7월 17일자 인터넷판). 8월에 나올 아베 수상의 「전후 70년 담화」에 대하여 ‘학자’들이 소견을 밝힌 것인데, 솔직히 말해 나로서는 이 선에서 아베 담화가 나오는 것에 단호히 반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아래에 기술하고자 한다.

 

지금 항간에는 ‘전후 일본=평화 국가’라는 이미지를 입각점으로 삼아 거기에서 일탈한 것으로 아베 정권=안보법안을 파악하고 이것에 대항하고자 하는 담론이 넘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허상이며 역사 인식으로서 잘못된 것이다. 일본은 헌법 9조를 준수해 오지 않았고, 오히려 ‘전후사’는 해석개헌사의 다른 이름이었다. 일미안보조약 및 유엔군 지위협정체제 아래 자위대와 미군은 일관해서 일본, 오키나와에 주류해 왔고, 항상 이들 군대와 기지는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과 같은 구체적인 전쟁의 ‘당사자’였다. 한국전쟁기에 한정해도, 일본 국내의 반전운동을 GHQ나 일본정부는 점령법규나 치안법령에 의해 가혹하게 탄압했다. 일본정부는 식민지 지배나 침략전쟁기에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와 냉전구조를 충분히 활용하여 아시아로부터의 전쟁책임 추궁과 반식민지주의의 목소리를 막았으며, ‘전후’ 세계에서의 일본 자본주의의 ‘권익’ 옹호를 위해 아시아의 군사독재정권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했다. 어떠한 의미로도 ‘전후 일본국가’는 ‘평화 국가’는 아니었다.

 

혹은 이것들은 ‘전후 일본’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으며 ‘전체적으로’ 역사를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전후의 호헌․혁신 세력이 스스로 설정한 기준에 비추어도, 위에서 제시한 여러 요소는 바람직한 ‘평화주의’를 훼손하는 극히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전후 혁신세력 중에 소수이지만 양심적인 부분은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에 기초한 ‘평화주의’의 실현을 부단히 거부하는 일본의 지배구조를 비판하지 않았는가. 위에서 든 여러 요소를 전제로 하면서 ‘평화 국가’였다고 강변하는 역사관은 단적으로 말해 아베 정권의 역사 인식이다. 이와 같은 ‘평화 국가’관에 서면 미국조차도 ‘평화 국가’라고 간주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성명의 최대의 문제점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진지하게 대면한 후에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할 것을 아베 수상에게 요구한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오히려 성명도 마찬가지로 위에서 제시한 ‘전후 일본=평화주의’의 허상 위에 서 있다. 그뿐인가, 이 성명은 ‘평화주의’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서 한발도 두발도 더 나아가 전쟁책임이나 식민지 지배 책임을 둘러싼 여러 논점에 파고들어 당장은 믿기 힘든 비역사적인 ‘전후사’ 이미지를 조탁하고 있다. 여기에 최대의 문제가 있다.

 

성명이 제시하는 ‘전후 일본’ 이미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전후 일본’ 국민은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에 기초하여 노력한 결과, 부흥과 번영을 달성하였고, 평화롭고 풍요로운 일본을 구축해냈다.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강한 속죄감과 회한의 염이 전후 일본의 평화와 경제 발전을 지탱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만약 아베 담화가 ‘침략전쟁’이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일본 국민의 ‘전후’의 노력은 주변 국가들에 전해지지 않으며, “그 결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본국민 전체가 불명예스러운 입장에 놓여, 현재와 미래의 일본국민이 커다란 불이익을 입”을 것이다. “전후 70년에 걸쳐 일본국민이 열심히 쌓아올린 일본의 높은 국제적 평가를 일본이 수행했던 과거 전쟁의 위법적이고 부정한 성격을 애매하게 처리함으로써 무화하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 담화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명은 다음과 같이 강조하며 끝맺는다.

 

 전후 일본은 이것을 깊은 교훈으로 가슴에 새겨 세계에 자랑할 만한 평화와 번영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일본이 미래에 걸쳐 이 왕도를 계속해서 걸으며 전후에 쌓아올린 평화롭고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안전한 사회를 더욱 갈고닦아 다른 나라에 경제, 기술, 문화 협력을 통해 그것을 나누어, 국민이 자랑할 수 있는 세계에 모범이 되는 국가로 계속해서 남아 있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역사, 국제법, 국제정치 연구에 종사하는 학도로서 아니 무엇보다도 일본국의 일원으로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베 총리여, 과거의 총리에 의한 담화를 계승하라, 그것이 ‘왕도’(손문)로서의 전후사를 담당한 국민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고 성명은 호소한다. 오누마 야스아키식의 ‘전후사’ 이미지의 정화(精華) 같은 느낌이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경악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한 것은 성명이 “우리들은 학문적 입장과 정치적 신조에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차이를 넘어 우리들은 아래와 같은 점에서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라고 기술했다는 점이다. 즉 성명이 제시한 역사 인식은 여러 신조나 ‘학문적 입장’ 차이의 전제가 되는 공통적이고 최대공약수적인 인식이 되는 셈이다. 아마도 대표인 오누마 씨가 성명을 기초했겠지만, 성명에 이름을 올린 요시다 유타카(吉田裕), 우쓰미 아이코(内海愛子), 아와야 겐타로(粟屋憲太郎), 아베 고키(阿部浩己) 같은 여러 분들은 정말로 이러한 역사 인식을 스스로의 현대사, 전쟁책임 연구에 비추어 “차이를 넘어”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일까. 여러 분들의 저작에서 많은 것을 배운 사람으로서 나는 꼭 이 점을 묻고 싶은 것이다.

 

성명에는 “전후의 부흥과 번영을 가져온 일본국민의 일관된 노력은, 타이완, 조선의 식민지화에 더하여 1931~1945년의 전쟁이 커다란 오류였으며, 이 전쟁으로 인해 3백만 명 이상의 일본국민과 그 몇 배에 달하는 중국 등 여러 외국 국민의 희생을 냈다는 것에 대한 통절한 반성에 입각하여 그러한 잘못을 두 번 다시 범하지 않겠다는 결의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라고 한다. 하지만, 요시다 유타카 『일본인의 전쟁관(日本人の戦争観)』은 과연 이러한 전후의 민중 의식 이해를 허용하는가. 정말로 조선이나 타이완의 식민지화에 대한 반성이 1945년 이후의 일본 민중 의식에 뿌리를 내렸을까. 오히려 요시다의 점령기 민중의식 연구는 전쟁책임에 관한 아시아 인식, 특히 식민지 책임의식의 결락을 그려내지 않았던가. 오히려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강한 속죄감과 회한의 염이 전후 일본의 평화와 경제 발전을 지탱한 원동력이었던 것입니다”라는 구절 중의 ‘희생’이라는 말에 대한 의혹을 문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애초에 성명은 조선이나 타이완에 대한 ‘침략’은 언급하지 않았고, 조선민주주의공화국도 안 나온다.

 

성명은 이렇게 언급하기도 한다. “전후 일본의 부흥과 번영은 일본국민의 노력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강화와 국교정상화에 임하여 배상을 포기하는 등, 전후 일본의 재출발을 위해 관대한 태도를 보였고, 그 후에도 일본의 안전과 경제적 번영을 다양한 형태로 뒷받침하고 도와준 각국의 일본에 대한 이해와 기대, 그리고 지원에 의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오늘날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해외 각국의 국민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도 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내가 우쓰미 아이코 『전후보상으로 생각하는 일본과 아시아(戦後補償から考える日本とアジア)』에서 배운 것은, 배상을 요구하는 아시아 각국의 분노의 목소리를 냉전체제하에서 미국이 틀어막아 각국이 배상청구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거나 필리핀처럼 불충분한 배상에 그쳤던 사실이다. 전쟁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보상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 배상들이 피해의 실태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지불 능력을 중시하여 이루어진 결과 전쟁 피해의 실태조사와 회복을 지연시켰다. 그것은 ‘관대’함이나 일본을 ‘도우려는’ 의사의 표명이 아니라, 억누를 길 없는 분노를 억눌림 당한 역사였다. 70년대 동남아시아에서의 반일 데모는 경제대국에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진지한 전쟁에 대한 반성을 하려고 하지 않아서 폭발한 것이다. 이러한 우쓰미마저도 인정할 역사적 사실과 위의 성명의 인식은 과연 양립 가능한 것일까.

 

또한 아베 고키 『국제법의 폭력을 넘어서(国際法の暴力を超えて)』의 중요한 메시지는 여성전범법정은 도쿄 재판에서 다루지 못한 전쟁범죄와 식민지 범죄를 재심하는 중요한 기회라는 점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가. 21세기를 또 다시 제국주의시대로 만들지 않고, 식민지 지배라는 불의를 문제삼음으로써 21세기의 이름에 어울리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아베는 지적했을 터이다. 이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20세기의 일본이 스스로의 제국으로서의 지배를 충분히 극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있다고 이해했었는데, 이러한 인식과 위의 성명은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나에게는 보인다. 정말로 다해야 하는 것은 배상 포기를 한 “해외 각국 국민에 대한 깊은 감사”가 아니다. 가해 책임을 다해 오지 않았던 역사를 인정하고 이것에 진지하게 대면하여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전쟁책임이나 식민지 지배책임을 추궁하지 않아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추궁하는 목소리를 이런저런 수단으로 틀어막았던 자가 할 때 지금도 여전히 책임 추궁을 요구하는 자들의 대답은 “천만에요”가 아니라 “헛소리 하지 말라”일 터이다. 그 분노는 압도적으로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때 성명의 ‘학자’들은 아베와 함께 “일본국민의 노력이 이해받지 못했다”고 역으로 화를 낼 것인가. 성명은 가령 아베 담화가 ‘침략’에 대한 명언을 피하거나 했을 경우, “그 점에 오로지 국제적인 주목이 몰려, 총리의 담화 자체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수상이나 관방장관이 담화를 통해 강조해 온 과거에 대한 반성에 대해서까지 관계 각국에 오해와 불신이 생겨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걱정을 표명한다. 하지만 허위의 ‘역사’로 장식한 담화를 내는 것은 실상에 대한 은폐로 이어질 위험성마저 존재한다. 오히려 아베 수상에게는 ‘침략’을 멋지게 제거한 담화를 제시하게 함으로써 만천하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하여 주변 각국으로 하여금 정당하게 경계와 ‘불신’을 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신’은 결코 ‘오해’가 아니다.

 

(정영환)

 

[원문]「王道」としての日本戦後史?――声明「戦後70年総理談話について」の問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