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의 ‘반론’ 검증: 재론 『제국의 위안부』의 ‘방법’에 대하여(2)

  1. 「반론」의 검증②―【2. ‘방법’ 비판에 대하여】에 대하여

 

 「반론」 제2절 「‘방법’ 비판에 대하여」의 검증에 들어가자. 박유하는 여기에서 나의 ‘방법’ 비판에 대하여 스스로의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비판하고 있는 요점을 벗어난 비판이라고 주장한다. 이 절은 세 항으로 나뉘어 있으므로, 각각에 대해 검증하자.

 

1) 빗나간 잣대

정영환은 내 책이 개념을 “정의”하지 않아서 혼란스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자료를 사용하면서도 이 책을 학술서 형태로 내지 않은 것은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고, 일반 독자들은 아무도 그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이 책이 정영환에게 “읽기 쉬운 책이 아니”(474)게 된 것은 개념을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책의 방법과 내용이 정영환에게 낯선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서에 학술서와 같은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이상하다, 실제로 “일반 독자” 중에 그러한 “문제제기”를 한 사람은 없다는 비판이다. 확실히 일반서에 학술서 수준의 정치한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빗나간”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박유하에게 학술서 수준의 정의를 기대한 것이 아니다. ‘강제동원’이나 ‘보상’, ‘책임’ 같은 본서의 테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가결한 극히 논쟁적인 개념에 대하여 최소한의 정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코 “읽기 쉬운 책이 아니”라고 한 것은 그 때문이다.

 실제로 본서는 논의 전개상 필요한 최소한의 정의도 결여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성실한 독자일수록 혼란에 빠진다. 예를 들면 이미 졸고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강제동원’에 대해 박유하는 극히 특수한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설명이 없다. 또한 국민기금에 대하여 일본정부가 명확히 보상이었음을 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보상’이라고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저자 나름의 정의와 설명이 필요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작업이 전혀 없기 때문에 독자가 각각의 개념이 어떠한 의미에서 사용되었는지를 추측하여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본서는 독자에게 터무니없는 부담을 강요하는―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어지는 것은 극단적으로 적은―놀랄 만한 서적”(박유하 『제국의 위안부』의 ‘방법’에 대하여(6))이라고 평가한 이유이다. 반대로 저자에게는, 진의나 ‘의도’를 나중에 제시함으로써 반론을 대신하는 태만이 허락된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2) 폄하

정영환은 내가 위안부의 차이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문제시하면서 “차이가 있었다는 주장 자체는 특별히 새로운 것이 아니”(474)고 “수많은 연구가 일본군이 점한 각 지역의 위안부 징집이나 성폭력 문제에 나타나는 특징을 논한 바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포지션의 유사성(물론 그들 간의 차별에 대해서도 이미 오래 전에 지적했다)을 지적하면서 대일본제국에 포섭된 여성들과 그 이외의 지역 여성들의 “차이”를 지적한 연구를 알지 못한다. 정영환의 “방법”은, 나의 책이 ‘매춘’에 언급한 점을 들어 실은 우익이 일찍이 한 이야기라고 폄훼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하지만 나의 시도는 그저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이들을 향해 “매춘”의 의미를 재규정하는 데 있었다.

 

 이 ‘반론’을 읽은 사람은, 내가 “조선인과 일본인의 포지션의 유사성”을 지적한 연구는 많이 있다고 주장한 줄 알 것이다. 박유하는 그것에 대해 그러한 연구는 없고 자신이 처음 말한 것이라고 반론했다고. 확실히 정말로 내가 그러한 지적을 했다면 박유하의 반론은 타당하다. 하지만 박유하가 인용한 부분을 포함하는 단락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물론 조선과 중국의 ‘위안부’가 그 피해실태상 차이가 있었다는 주장 자체는 특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벌써 수많은 연구가 일본군이 점령한 각 지역의 ‘위안부’ 징집이나 성폭력 문제에 나타나는 특징을 논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문제는 조선인과 일본인 ‘위안부’는 ‘제국의 위안부’라는 의미에서 비슷했다는 명제를 전제로 사료를 해석하는 데 있다.(474쪽)

 

 일독하면 명확하듯이, 내가 선행 연구에 지적이 있다고 한 “차이”는 조선과 중국의 그것이다. 조선과 일본이 아니다. 오히려 본서의 특징으로서 “조선인과 일본인 ‘위안부’는 ‘제국의 위안부’라는 의미에서 비슷했다는 명제를 전제로 사료를 해석하는 데 있다”고 명확히 기술했다. 나는 올바르게 박유하의 주장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데, 어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무엇이 ‘폄하’라는 말인가. “정영환의 “방법”은, 나의 책이 ‘매춘’에 언급한 점을 들어 실은 우익이 일찍이 한 이야기라고 폄훼하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단정에 이르면, 유감스럽게도 나는 박유하가 무엇을 ‘반론’하고 싶은 것인지조차 이 문장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세 번째 항 「3)‘방법’ 이해의 미숙」은 약간 길기 때문에 세 부분으로 나누어 검토하고자 한다.

 

  정영환은 조선인 위안부의 “정신적 위안자” 역할에 대한 나의 지적이 “비약”이자 “추측”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우선 증언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지적하고자 한 것은, 마음 여부 이전에 조선인 위안부가 그런 틀 안에 있었다는 점이다. ‘국방부인회’의 띠를 두르고 환영/환송회에 참가한 이들이 설사 내심 그 역할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 하더라도 그런 표면적 상황에 대한 해석이 부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근거 없는 “추측”은 물론 배제되어야 하지만, 모든 학문은 주어진 자료를 통해 ‘상상’한 ‘가설’을 구축하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나는 모든 것을 증언과 자료에 기초했다. 책에 사용하지 않았던 자료들도 곧 따로 정리해 발표할 생각이다. “동지”라는 단어를 쓴 것도 우선은 제국일본에 동원되어 ‘일본’인으로 존재해야 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추측’에는 근거가 있고 ‘비약’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문제삼은 ‘비약’이란 무엇이었나. 졸저의 관련 부분을 인용한다.

 

박유하는 센다 가코(千田夏光)가 소개한 어느 일본군 병사의 증언―일본인 ‘위안부’가 “멋지게 죽어주세요!”라고 말했다는 회고―를 소개하면서, 일본은 ‘제국의 위안부’에게 일본 군인의 신체적 ‘위안’과 더불어 정신적 ‘위안’도 요구했는데, 이러한 “정신적 ‘위안’자로서의 역할―자기 존재에 대한(다소 무리한) 긍지가 그녀들이 처한 가혹한 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한국어판, 61쪽)라고 주장한다. “물론 ‘조선인 일본군’이 그랬듯이, ‘애국’의 대상이 조선이 아닌 ‘일본’이었다는 점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을 일본인 위안부와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한국어판, 62쪽)는 유보를 일단 달면서도, 결론적으로는 일본군 병사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 증언에 등장하지도 않은 조선인 ‘위안부’의 의식을 추측한다는 비약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474-475쪽)

 

 내가 말하는 ‘비약’의 의미는 명확할 것이다. 센다 가코가 소개한 증언은 일본군 병사에 의한 일본인 ‘위안부’에 관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거기에서 조선인 ‘위안부’의 의식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비약’이 아니란 말인가. 이것이 내 비판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 물음에 대해 박유하는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혀 반론하지 않는다. 일반론을 반복할 뿐, “증언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거나 “모든 것을 증언과 자료에 기초했다”고 하면서도, 기실은 ‘증명’도 ‘자료’도 제시하지 않았다. 왜 센다 가코가 소개한 일본인 ‘위안부’에 대한 증언에서 조선인 ‘위안부’의 의식까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 박유하는 성실히 응답해야 한다.

 나는 본서를 읽었을 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박유하의 상상이며, 박유하의 말을 빌리자면, “근거 없는 ‘추측’”에 지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문제는 조선인과 일본인 ‘위안부’는 ‘제국의 위안부’라는 의미에서 비슷했다는 명제를 전제로 사료를 해석하는 데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개개의 증언이나 자료에서 실태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박유하가 미리 만들어 놓은 스토리에 따라서 증언이나 자료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탓에 일본인 ‘위안부’에 관한 증언을 곧바로 조선인 ‘위안부’에게도 타당한 것으로 읽어 버린 것이다. 이 ‘방법’이야말로 본서의 최대의 문제이다.

 또한 박유하는 “‘국방부인회’의 띠를 두르고 환영/환송회에 참가한 이들이 설사 내심 그 역할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 하더라도 그런 표면적 상황에 대한 해석이 부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론’을 시도하고 있다. 아마도 박유하는 여기에서 당사자들은 “내심 그 역할을 부정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지만, “표면적 상황에 대한 해석”, 즉 객관적으로는 ‘환영/환송’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이 주장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로 이와 같은 “표면적 상황에 대한 해석”은 말 그대로 표면적일 뿐이다. 보통 이러한 사실, 즉 (A)‘국방부인회’에 동원되어 ‘환영/환송회’에 참가한 조선인이 있었다는 사실과, (B)내심으로는 ‘환영/환송’하는 역할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사료가 있었다면, 표면적으로는 동원되었지만(A), 동원시에 사용된 이데올로기를 조선인들은 내면화하지 않았다(B)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A)를 나타내는 사료는 결코 드물지 않지만(체제의 이데올로기를 ‘표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므로 당연할 것이다), (B)와 같은 사료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모두가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민중의 심성의 기록은 좀체 남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전시체제기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귀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유하는 (B)와 같은 사실보다도 (A)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표면적’ 해석이다.

  두 번째는 보다 심각하다. 위에서 인용한 『제국의 위안부』의 기술을 읽으면 알 수 있듯이, 박유하는 분명히 ‘위안부’ 피해자들이 ‘내심’으로 “정신적 ‘위안’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다소 무리한)긍지”를 가지고, 그것이 “그녀들이 처한 가혹한 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었”다고 ‘상상’하고 있다. “내심 그 역할을 부정하고 싶어 했”던 것을 지적한 것이 아니다. ‘내심’으로, 생존을 위해 “‘위안’자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설사 내심 그 역할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 하더라도 그런 표면적 상황에 대한 해석이 부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반론’은 전혀 반론이 되어 있지 않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종래의 자신의 주장을 대폭적으로 변경한 것이다. 스스로의 해석 오류를 깨달았다면, 그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살짝 바꾸는 흉내를 내서는 안 된다. 만약 이 ‘반론’이 스스로의 종래의 주장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했다면, 더욱더 문제는 심각하지만.

  검증을 이어가자. 박유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영환은 군인에 관한 위안부의 “추억”을 논한 부분을 들어 “추억”에 대한 ‘해석’을 “먼 거리가 있다”(475)며 비판한다. 그러나 학자의 작업은 ‘개별적인 예’들을 분석하고 총체적인 구조를 보는 일이다. 내가 시도한 작업은 “증언의 고유성이 경시”되기는커녕 그동안 묻혔던 한 사람 한 사람 증언의 “고유성을 중시”하며 결과를 도출해내는 일이었다. ‘대상의 의미’를 묻는 작업에 자신이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다른 이의 작업을 폄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같은 문맥에서 정영환은 “일본인 남성”의, 그것도 “소설” 사용은 “방법 자체에 큰 문제가 있다”(475)고도 말한다. 이러한 비판은 일본인 남성의 소설은 그 존재 자체가 일본에 유리한 존재일 것처럼 생각하는 편견이 만드는 것이지만, 나는 일본이 위안부를 어떻게 가혹하게 다루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부분에서 소설을 사용했다. 위안부들의 참혹한 생활이, 다름 아닌 위안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던 군인들, 후에 작가가 된 이들의 작품 속에 많이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일본인들을 향해 자신들의 조상이 쓴 이야기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위안부의 증언은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향해 증언에 힘을 실리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사용했을 뿐이다. 정영환은 역사 연구자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설” 경시 태도를 드러내고 있지만, 소설이, 허구의 형태를 빌려 때로 진실 이상의 진실을 드러내는 장르이기도 하다는 것은 상식이기도 하다.

 

 졸고의 해당 부분은 위에서 제시한 단락에 이어지는 부분으로 다음과 같다.

재판에서 문제가 된 ‘동지적 관계’를 논하는 방법도 그렇다. 증언과 소설을 바탕으로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 ‘동지의식이 있었다’는 해석을 하지만, 어떤 개인이 일본 군인의 추억을 말하는 것과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이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는 해석 사이에는 너무나 먼 거리가 있다. 증언의 고유성이 경시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 남성의 소설을 통해서 조선인 ‘위안부’로서 ‘그녀’의 의식, 그것도 일본군과의 ‘동지의식’의 존재를 논한다는 방법 자체에 큰 문제가 있다.(475쪽)

 

 박유하는 여기에서도 나의 물음에 아무런 구체적인 답을 하지 않는다. 더욱이 박유하는 마치 내가 소설이라는 표현형식 자체의 ‘진실’성을 부정하는 듯이 문제를 바꾸고 있다. 『역사비평』 논문에서는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본서의 한일협정 이해에 대한 비판을 제일의 목적으로 했다. 이 때문에 지면관계상 ‘동지적 관계’에 대한 비판은 구체적인 예를 들며 진행할 수 없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소설작품에서의 에피소드의 취급 방법을 문제삼았는데(블로그에서는 지적했으므로 그것은 박유하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결과 박유하의 유치한 발뺌을 허락하고 만 것은 정말로 유감이다.

  내가 여기에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본서에서의 후루야마 고마오의 소설의 취급 방법이다. 박유하는 후루야마 고마오의 소설 「개미의 자유」에 나타나는 ‘위안부’ 묘사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여기에는 속아서 왔다면서도 “군인들이 총알 맞는 것”과 “위안부가 된 것”을 그저 운이 나빴다는 식으로 간주하고 군인을 원망하지 않는 위안부가 있다. 그녀가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이미 식민지가 된 지 오래인 땅에서 자라나 자신을 ‘일본’의 일원으로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그녀의 눈앞에 있는 남성은 어디까지나 동족으로서의 ‘군인’일 뿐 적국으로서의 ‘일본군’이 아니다. 그녀가 일본군을 가해자가 아니라 자신과 똑같이 불행한 ‘운’을 가진 ‘피해자’로 보면서 공감과 연민을 표할 수 있는 것도 그녀에게 그런 동지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제국의 위안부』 한국어판, 75쪽)

 

 하지만 여기에서 박유하는 “후루야마의 시각에서 그려진 소설의 묘사를, 마치 ‘그녀’의 의식을 나타내는 재료인 것처럼 이용하고 있다. 후루야마의 소설을 통해서 조선인 ‘위안부’로서의 ‘그녀’의 의식, 그것도 일본군과의 ‘동지 의식’이라는 것의 존재를 논한다는 방법 자체가 이미 파탄난 것이다.”(「박유하 『제국의 위안부』의 ‘방법’에 대하여」).

 박유하는 “소설이, 허구의 형태를 빌려 때로 진실 이상의 진실을 드러내는 장르”라고 한다. 확실히 그러한 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묻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소설의 진실성 여부가 아니다. 왜 후루야마의 소설에 묘사된 조선인 ‘위안부’ 이미지에서 현실의 조선인 ‘위안부’들에게 “동지의식이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라는 구체적인 문제이다.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역사 연구자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설’ 경시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등의 야유를 하며 학문 분야의 차이로 문제를 바꿔치기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나는 본서에 대해 문학 연구자들이 이론이나 비판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다. 소설의 묘사를 그대로 현실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고 그것을 역사적인 현상의 해석에 대입하는 나이브한 ‘문학’관은 단적으로 말해 문학연구의 초보자가 가질 법한 것이 아닐까. 픽션인 소설에서 어떠한 역사에 관한 리얼리티를 끌어내서 해석할 것인가. 그 방법이야말로 문학연구자가 실력을 발휘하는 분야라고 문학연구의 초보자인 나는 상상하는데, 박유하가 후루야마의 소설을 논하는 방식에는 그러한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그저 후루야마의 소설에 나타난 묘사를 인용하여 거기에서 ‘사실’을 추측할 뿐이다. 이것은 ‘문학연구’일까. 문학연구자 분들한테 꼭 배우고 싶다.

  「반론」 제2절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자.

 

정영환은 자신의 정황을 “운명”이라 말한 위안부를 내가 평가한 것을 비판하지만, 위안부의 증언에 대한 평가 역시 “고유성을 중시”하는 일이다. “운명”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정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내가 평가한 것은, 세계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에서 긍정적인 어떤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가치관이 시키는 그러한 “평가”가 부정되어야 할 이유도 없지만, 그와 반대되는 태도에 대한 비판이 위안부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행위와 정반대”(476)가 되는 건 아니다. 학자라면 오히려, 증언에 대한 공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수적인 여러 정황을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더구나 거짓증언까지도 묵인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런 상황에 대한 묵인은 오히려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무엇보다, 내가 “운명”이라 말하는 선택을 평가한 것은 그저, 그렇게 말하는 위안부도 존재한다는 사실, 그러나 그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일 뿐이다. 일본을 용서하고 싶다고 말한 이의 목소리를 전한 것도 같은 이유다. 나는 ‘다른’ 목소리를 절대화하지 않았고, 정영환의 말처럼 그저 “귀 기울였을” 뿐이다. 그런 목소리가 그동안 나오지 못했던 이유는,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억압이 이들에게도 의식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영환이 말하는 바 “증언의 찬탈”은 오히려, 정영환과 같은 태도와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에게서 일어난다는 것이 내가 이 책에서 지적한 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의 “방법”이 “윤리와 대상과의 긴장관계를 놓친 방법”이며 “역사를 쓰는 방식으로는 적절하지 않다”(476)는 비판은 나의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비판일 뿐이다.

  

 여기에서도 박유하는 나의 비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증언’을 최대한 평가하는 한편 “천황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할 때까지 나는 용서할 수 없다”고 ‘증언’한 어느 여성은 “‘도덕적으로 우위’라는 정당성에 의한 ‘도덕적 오만’”, “상대방의 굴복 자체를 목표로 하는 지배욕망의 뒤틀린 형태”, “굴욕적인 굴복 체험의 트라우마에 의한 또 다른 강자주의”라며 최대한 매도한다(299~300쪽). 이런 글쓰기 방식은 ‘증언’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행위와 정반대로 ‘증언’의 찬탈 행위 아닐까. 

  

 나는 “자신의 정황을 “운명”이라 말한 위안부를 내가 평가한 것을 비판”한 것이 아니다. 왜 천황을 비판한 이 여성은 이렇게까지 박유하에게 매도되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고 물었던 것이다. 결국 박유하는 그저 “귀를 기울인” 것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용서하는 목소리와 천황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한 목소리를 선별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물음이다. 또한 기묘한 것은 박유하의 “더구나 거짓증언까지도 묵인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런 상황에 대한 묵인은 오히려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반론’이다. 이것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 내가 살펴본 한에서는 본서에서 박유하는 ‘거짓증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거짓증언’을 하고 있다는 것일까. 이것만으로는 완전히 의미가 불분명하다.(*추기 참조)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2절에서도 박유하는 추상론과 야유, 비꼬기를 반복할 뿐, 나의 비판에 전혀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추기

 

 겨우 『역사비평』 최신호를 입수하여 확인한 바(facebook의 「반론」에서는 주가 생략되어 있다), 위의 ‘거짓증언’에 관한 문장에 붙은 주에서 박유하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은 지난 20여 년간 몇 번이나 바뀌었다. 최근에 과거의 증언집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는데, 이것은 증언의 불일치를 지적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466 

  

 즉, 박유하가 말하는 ‘거짓증언’이란 이용수 씨의 증언을 가리키는 것 같다. 아울러 “천황이 내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할 때까지 나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이용수 씨이다. 박유하가 인용한 『미래 한국』의 기사는 이용수 씨의 “증언집에 대한 불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이용수 할머니는 정대협이 1993년 출간한 증언집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증언 청취를 부실하게 하고, 일본에 가서 증언할 때도 통역을 잘못해서 위안부가 된 경위가 사실과 다르게 알려졌다는 것이다.

 

“증언은 내 생명과도 같아요. 그런데 정대협 담당자들이 본인한테 확인도 하지 않고 사실과 다르게 증언집을 내고 6500원에 판매까지 하더라고요. 증언을 들으려면 따로 조용한 곳에서 정식으로 해야지 식사하면서 ‘할머니 어디 갔다 왔어요?’라고 질문하고 대답한 게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증언들이 뒤죽박죽 된 게 많아요.” 

  

 여기에서는 이용수 씨의 ‘불만’이란, ‘위안부’가 된 경위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경위의 증언 변화, 불일치를 ‘거짓증언’ 같은 것으로 단정할 수 있을지 애초에 의문이지만, 변화나 불일치가 있었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우위’라는 정당성에 의한 ‘도덕적 오만’”, “상대방의 굴복 자체를 목표로 하는 지배욕망의 뒤틀린 형태” 등등의 매도가 허락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용수 씨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천황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할 때까지 나는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박유하는 이용수 씨의 증언 전체가 ‘거짓’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정영환)

 

[원문] 朴裕河の「反論」を検証する―再論・『帝国の慰安婦』の「方法」について(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