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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후에 재일조선인 지식인이 있다”(박유하)는 건 무슨 말인가

박유하『제국의 위안부』

 

도대체 왜 이런 식의 표현밖에 못하는가. 정말로 화가 난다. 마이니치 신문(毎日新聞)에 실린 박유하에 대한 인터뷰말이다. 

한국에서 나를 고소하게 되었지만, 그 배후에는 재일조선인 지식인이 있고, 고소 후에도 일본 연구자의 연구에 기초하여 내 책은 거짓이라고 원고 측이 계속 주장한 점으로 보아서는 일본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번 고소의 배후에는 재일조선인 지식인이 있다니 무슨 말인가. 이것은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미리 밝혀 두지만, 나는 나눔의 집여성들이 행한 고소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여성들이나 나눔의 집관계자와 면식도 없다(나는 아예 한국에 입국을 못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를 가리키고 있는가.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함부로 박유하는 말하는가. 박유하는 이제 적당히 나눔의 집의 여성들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듯한 인상 조작을 그만두어야 한다.

 

 계속 지적해 온 것이지만, 박유하는 반론할 때 비판에 답하지 않고 비판자의 속성이나 악의(‘오독’ ‘왜곡’)을 문제삼는 악벽이 있다. “배후에는 재일조선인 지식인이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에도, 자신을 재일조선인(남자)’이 비판하고 있다는 구도를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이 뚜렷이 보인다. 물론 화해를 위해서제국의 위안부을 비판한 것은 재일조선인만이 아니다. 일찍부터 박유하를 비판한 것은 니시노 루미코(西野瑠美子)였고, 나카노 도시오(中野敏男), 마에다 아키라(前田朗) 외에 다양한 비판이 있다(박유하 화해를 위해서를 둘러싼 논쟁재고(1)의 참고문헌 참조).

 

 같은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발언도 실려 있다.

 

문제점을 지적할 때에는 자신의 해석이 개입된다. ‘매춘부여서는 안 된다라거나 자발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관념이 있다. 물론 나는 자발적인 매춘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운 서술방식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독해, 해석의 문제이다. 나는 전공이 문학이라서 텍스트 읽기를 계속 해 왔다. 그만큼 독해에 인내가 필요한 서술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라고 쓰고 아니 동시에 이기도 하다는 식으로. 일본과 한국의 지원자와 비판자 모두에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점을) 분석한 사람은 그곳을 인내하며 읽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독해, 해석의 문제일 리가 없을 것이다. 당연히 사실이 문제이지 않은가. 박유하는 명백히 자발적매춘이었다는 것은, 조선인 위안부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의 문제이다. 그에 입각하여 '해석'의 차원에서 우파를 '비판'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유하의 사실 이해가 비판받고 있는 것이다. AA’ 운운하는 것도 완전히 터무니없다. 제국의 위안부에는 명백히 양립할 수 없는 AB가 제멋대로 나열되어 있어서 독자가 혼란스러워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의 인내력 부족에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박유하는 종종 발뺌하기 위해 문학연구를 이용하지만, 본래 문학연구자야말로 그러한 악용을 비판해야 할 것이다(고모리 요이치는 내용을 평가하고 있지만). 박유하는 스스로의 저작이 비판받는 원인을 비판하는 측의 속성이나 능력 탓으로 하는 근시안적인 반론을 이제 적당히 그만두어야 한다.

 

(정영환)

원문: 「その後ろには在日の知識人がいる」(朴裕河)とはどういうこと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