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약속’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성명에 부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책임 추궁을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시점에서 굳이 나누자면, 작년 12월 28일의 한일 외무장관 3항목 ‘합의’에 직면하여 크게 두 가지 노선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합의’를 전제로 ‘책임’의 구체화를 일본정부에 요구하는 노선, 두 번째는 ‘합의’를 전제로 하지 않고 그것의 파기와 무효화도 시야에 넣어 일본정부에 법적 책임의 승인을 요구하는 노선이다. 첫 번째 노선은 주로 일본의 언론인이나 피해자 지원 단체에 보이고, 두 번째 노선은 피해 당사자들이나 정대협이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노선의 특징은, 반복하지만, ‘합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노선을 대표하는 와다 하루키의 견해를 인용한다.

  

일본정부가 사죄의 의미를 담아 10억 엔의 공금을 지출하여 재단이 만들어지는 것은 전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일본의 사회가 위안부들의 마음에 닿아 납득하며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나는 1990년대부터 문제 해결에 임해 왔지만, 위안부의 약 3분의 2가 위로금 수취를 거부했다. 위안부들은 이번 기시다 외무장관의 기자회견에서는 일본 측의 사죄의 태도를 읽어낼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앞으로 아베 수상이 사죄의 마음을 알기 쉽게 표현하지 않으면, 그녀들에게까지 마음이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고령으로 입원한 사람들도 있고, 돈이 아니라 인생을 망친 것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지원단체가 어떻게 반응할지, 한국의 여론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을 할 수 없으며, 문제가 수습될지의 여부는 현 단계에서는 알 수 없다.

 즉, ‘합의’를 ‘전진’으로 평가하고 앞으로의 ‘해결’의 대전제로 삼으면서도 일본 측의 “사죄의 태도”가 피해자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다, “마음”을 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와다의 주장이다. 이 입장에서 보면, 남겨진 문제는 일본 측의 “사죄의 마음”의 표시, 그리고 피해 당사자들의 수취 방법이 된다. 이러한 와다의 입장은 일본정부를 보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첫 번째 노선은 ‘합의’에 대한 과대평가에 입각해 있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두 노선은 얼핏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3항목 ‘합의’ 후의 운동, 특히 한국에서의 피해 당사자들과 그 지원자의 투쟁을 생각할 때 간과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노선은 이번 ‘합의’를 추진한 와다 하루키 이외에도 특히 일본의 지원 단체에 보이는 입장이다. 아래에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 대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의 성명 「피해자 부재의 ‘타결’은 ‘해결’이 아니다」(이하, 전국행동 성명)을 통해 그 이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 문제는 일본 측 성명에 있는 ‘책임’의 해석이다. 전국행동 성명은 일본정부의 책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2. 일본정부는 이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아베 정권이 이것을 인정한 것은 4반세기 동안이나 굴하지 않고 싸워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시민운동이 거둔 성과이다. 그러나 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것은 즉 「제언」에 제시한 ①군이 ‘위안소’ 제도를 입안, 설치, 관린, 통제한 주체라는 것, ②여성들이 의사에 반하여 ‘위안부’가 되어 위안소에서 강제적인 상황에 놓였다는 것, ③당시의 국제법, 국내법을 위반한 중대한 인권침해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군의 관여’를 인정하는 것에 머문 이번 발표로는 피해자를 납득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과연 이번 일본 측 성명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일까. 전국행동 성명이 문제로 삼은 것은 이번 ‘합의’ 중에 기시다 외무장관 발표 (가)“위안부 문제는 당시의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깊이 상처 입힌 문제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지적이 있는 것처럼, 일본 측 성명의 문언은 고노 담화를 계승한 것이다. 고노 담화에 ‘책임’이라는 말은 없지만, 이번 일본 측 성명의 문언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일본에 의한 전쟁범죄라는 것을 인정한 후의 법적 책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생각할 때 이번 일본 측 성명의 ‘책임’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세계(世界)』 2016년 1월호에 게재된 와다 하루키의 논문 「제기되는 위안부 문제 해결안: 한일 정상회담 이후를 전망한다(問われる慰安婦問題解決案: 日韓首脳会談以後を展望する)」이다. 와다는 “법적 책임”을 둘러싼 대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제1조건(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피해자가 받아들이고 한국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안이라는 조건: 인용자 주)은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이것에 대해 일본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조건은 세 가지라고 생각된다. 첫 번째는 한일조약 시의 협정으로 청구권 문제는 ‘해결 완료’가 되었으므로, 법적 책임이라는 논리를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적’인 조치를 취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238쪽)

 외무성이 와다의 제안을 받아들여 “책임을 통감”이라는 문언을 채용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미 와다 논문이 소개하는 것처럼, 2012년에는 한일 양 정부 사이에서 종래의 “도의적 책임을 통감”이라는 문언을 피하고 “책임을 통감”으로 하는 사죄문을 작성할 것에 ‘합의’했다. 와다 논문이 2012년의 ‘합의’를 외무성에 상기시킬 목적으로 쓰인 것은 명백하다. ‘법적 책임’으로도 ‘도의적 책임’으로도 명기하지 않은 “책임을 통감”이라는 표현을 채용함으로써 한일 양쪽이 국내용으로 자신들한테 편한 설명을 할 수 있는 문서를 작성한 것이다.

  확실한 것은 “책임을 통감”이라는 문언에는 일본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했다는 함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법적 책임의 인정을 회피하기 위해서 삽입된 문언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 점에서 1995년의 국민기금 이후의 일본정부의 입장은 본질적으로는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전국행동 성명의 “일본정부는 이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평가는 피해 당사자나 지원 단체의 운동의 성과를 평가하는 문맥에서 사용된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일본 측 성명에서의 ‘책임’이라는 말이 가지는 그야말로 책임회피적인 문맥을 간과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확실히 일본정부의 사실 인정은 완전히 애매하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책임’이라는 애매한 말을 사용한 필연적 귀결인 것이다. 일본정부가 10억 엔을 ‘배상’이 아니라고 명언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다. 

 동일한 문제는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wam)의 「한일 외무장관의 정치적 타결에 대한 wam의 제언」에도 해당된다. 「제언」은 “최종적이자 불가역적으로 합의”를 “어리석은 약속”이라고 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타결’을 피해자가 수용 가능한 ‘해결’로 잇는 길을 시간이 걸려도 신중히 찾아 가고자 한다”고 하며, ‘합의’를 전제로 한 ‘해결’이라는 노선에 서 버렸다. 그리고 “일본정부는 책임에 ‘도의적’이라는 한정을 다는 보도에 반박하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책임’을 통감하고 있음을 계속해서 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제언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도의적’을 붙일지 여부가 아니다. ‘책임’이라는 말은 위의 와다 논문에서 명확히 지적하듯이 손때 묻은 ‘도의적 책임’을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반발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인 것이다. ‘책임’이라는 말의 불명료함을 간파하고 ‘합의’의 전제 그 자체를 되묻는 작업이야말로 필요하지 않을까.

 ‘책임’에 관한 이러한 과대평가와 밀접하게 관련된 전국행동 성명의 두 번째 문제가 아래의 제6항이다.

 

6. 일본정부는 피해자 부재의 정부간 타결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인식하고 아래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①총리대신의 사죄와 반성은 외무장관이 대독, 혹은 대통령에게 전화로 사죄하는 식의 형태가 아니라, 피해자가 사죄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헝태로 다시 수상 자신이 공식적으로 표명할 것.

②일본국의 책임이나 고노 담화에서 인정한 사실에 반하는 발언을 공인이 했을 경우, 이것에 단호히 반박하고, 헤이트스피치에 대해서도 단호한 태도를 취할 것.

③명예와 존엄의 회복,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사업에는 피해자가 무엇보다 요구하고 있는 일본정부 보유 자료의 전면 공개, 국내외에서의 추가 자료조사, 국내외의 피해자 및 관계자에 대한 의견 청취를 포함한 진상규명 및 의무교육과정 교과서의 기술을 포함한 학교 및 일반에서의 교육을 포함할 것.

④아시아・태평양 각지의 피해자에 대해서도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동일한 조치를 취할 것. 

 내가 전국행동 성명을 첫 번째 노선, 즉 ‘합의’를 전제로 ‘책임’의 구체화를 일본정부에 요구하는 노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제6항 때문이다. 과연 문제는 수상이 사죄하는 형식의 문제일까. 외무장관에게 대독시킨 것은 확실히 파렴치하다. 하지만 그것은 이번 ‘합의’의 본질을 오히려 일본정부가 솔선해서 보여준 행위가 아닐까. 아베가 와서 무릎을 꿇더라도, 이번 ‘합의’의 기만성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합의’를 전제로 한다면, 아베의 파렴치한 행동 때문에 명확해진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 되기 쉽다. 이러한 행동의 요구는 ‘합의’의 철회와 한 쌍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합의’를 전제로 하는 것은 소녀상을 철거하고 재단을 만들어 10언 엔을 수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발표에 의해 이 문제가 최종적이자 불가역적으로 해결되는 것을 확인한다”는 것이 발표되어 있다. 「wam의 제안」이 언급한 대로 이것은 ‘어리석은 약속’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약속’이라면, 이것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 ‘합의’를 전제로 해서 어떠한 의무를 일본정부에 과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일본의 시민운동에 그러한 힘은 없으며, 애초에 ‘합의’의 논리적 귀결로서 그러한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④에 이르면 이번과 같은 법적 책임 회피의 ‘책임’론을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피해자에게도 적용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wam의 제언」도 완전히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

 최대의 문제는 이러한 일본 측 지원 단체의 ‘합의’를 전제로 한 성명들이 현재 ‘합의’를 전제로 하지 않고 그 파기를 염두에 두고 소녀상 앞에서 싸우고자 하는 피해 당사자나 정대협을 비롯한 한국 사람들의 운동, 즉 두 번째 노선에게 커다란 제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있다. 성명의 ‘합의’를 전제로 하는 입장은 극히 혼란한 한국의 정치상황 속에서 보다 보편적인 시야에 서서 원칙적인 저항을 시도하고 있는 사람들을 한국 내의 운동으로 고립시키기 쉽다. 이 성명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그저 불충분하다기보다 피해 당사자나 정대협의 운동의 장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의 잘못된 졸속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면 정부로서도 피해자들이 살아있을 때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없게 될 것이라는 말은 설득이 아닌 협박에 가깝게 들린다”는 정대협의 논평 구절은 직접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일본인들에게도 향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의 매스 미디어가 반복하는 ‘대화’는 여기에서 말하는 ‘협박’이다. ‘합의’를 전제로 하는 것은 이러한 ‘협박’의 대열에 가담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만약에 정대협이 첫 번째 노선을 취하게 된다면 아무리 한일 양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었다고 해도 피해 당사자를 납득시키는 역할을 떠맡는 것, 즉 ‘합의’의 노선을 보완하는 역할을 떠맡게 된다. 당사자들의 운동에 지원운동이 제약을 가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지원 운동에 아무런 공헌도 한 적 없는 내가 이렇게 쓰는 것이 외람된 일임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아래에 두 가지를 요구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전국행동’ 및 wam은 이 성명과 제언을 재검토하여 ‘합의’를 전제로 한 부분을 철회해야 한다. 재검토한 후에 만약에 새로운 제언을 낸다면, 정대협 등의 한국 지원 단체와 협의 후에 명확히 ‘합의’를 거절한 후에 일본정부의 전쟁범죄 책임추궁을 위한 제언을 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지금 제출된 피해 당사자나 지원 단체의 요구를 저애하지 않기 위해 최소한 필요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피해 당사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이라는 말을 대신하는 목표를 내거는 것이다. 물론 피해 당사자를 무시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피해 당사자’를 내세우는 것이 현재로서는 역으로 당사자들을 곤경에 빠뜨리기 쉬운 구도가 생긴 것을 우려해서이다. 한일 양 정부의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진 지금, ‘피해 당사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이라는 말 아래 한일 양 정부의 공략(일본의 매스 미디어가 ‘대화’라고 부르는 것)의 화살이 개개의 피해 당사자를 향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박유하가 하려고 하다가 실패한 것-당사자와 지원 단체의 분단-을, 이번에는 한국정부가 하려고 할 것이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두 국가에 대해 이 레토릭은 피해 당사자들을 정면에 세우는 역효과를 내고 만다.

  필요한 것은 어떠한 말일까. 이 국면에서 제기되어 있는 것은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우리들’ 특히 일본에 있는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보편적인 규범에 입각하여 스스로의 문제로 받아들여 어떠한 책임을 일본에 추궁해야 할지가 아닐까. “피해 당사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이라는 말은 피해 당사자나 정대협의 극히 원칙적인 자세에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의 전쟁범죄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과 동의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일본인들이 스스로의 말로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전쟁범죄이고 일본은 ‘불가역적’으로 그 책임을 인정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다름 아닌 지금 요구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극히 긴급한 과제이다.

  이번 ‘합의’는 국민기금 실패의 ‘교훈’을 표면적으로만 배워 “피해 당사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이라는 말을 역으로 취해 새로운 매직 워드(‘책임’)로 본질적인 대립을 은폐하려고 한 것으로, 말하자면 ‘아베 신조=와다 하루키 노선’의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아베 신조=와다 하루키 노선’의 ‘어리석은 약속’을 전제로 하지 않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요구되고 있지 않을까.

 

(정영환)

 

원문: 「愚かな約束」を前提にすべきではない――日本軍「慰安婦」問題解決全国行動声明に寄せ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