読者です 読者をやめる 読者になる 読者になる

“동아시아 평화를 훼손”하는 것은 누구인가

박유하『제국의 위안부』

"이러한 책의 주장이 한국사회에 받아들여질 경우, 동아시아 평화를 현재 이상으로 훼손하게 될 것이다.(201677)

 

 최근 한국에서 간행된 나의 저서 망각을 위한 화해’: 제국의 위안부와 일본의 책임의 한국어판에 대한 박유하의 평가다.

 

 박유하는 7월 11일에 내 책에 대한 반박만을 위해서 신문기자 간담회를 연다고 한다. “이 책의 주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특히 인용이나 논지전개에서 지극히 자의적인 방식으로 저의 책과 이른바 양심적인 현대일본지식인들마저 왜곡하고 있음을 밝히려한다고 한다. 위에 인용한 동아시아 평화를 현재 이상으로 훼손한다는 문구는 기자간담회 안내문에 박유하가 쓴 것이다. 일본 미디어를 향한 호소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내 책이 한국에서 간행된 것에 대해 박유하는 상당히 당황한 듯하다. “적지 않은 매체가 36세 재일교포 연구자의 왜곡된 인식을 대단한 통찰이자 인식인 것처럼 전해, 그의 말을 한국사회가 믿게 되었을 뿐 아니라 나를 사기꾼 취급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2016년 7월 6)는 인식인 듯하니,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재일조선인 애송이가 하는 말을 한국 미디어가 평가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스스로가 뿌린 씨앗이다. 박유하가 취해야 할 일은 스스로의 저작에 성실히 마주하여 비판에 정면으로 답하는 길 이외에는 없다. 하지만 박유하는 내 책이 한국에서 출판된 것을 자아성찰의 기회로 삼기는커녕 내 입국거부나 출판기념회를 둘러싸고 상식적으로는 믿기 힘든 언동을 반복하고 있다.

 

 이미 보도된 대로 졸저의 간행에 맞춰 서울에서 7월 1일에 출판기념회가 개최되었는데, 나는 한국정부에 또 다시 입국을 거부당해 행사에 참가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당일 오전에 기자회견을 했고 나는 중계로 항의 의사를 표시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출판기념회 실행위원회는 입국 거부에 대한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 대한 찬동 서명에는 600명에 달하는 분들이 항의의 의사를 표시해 주었다. 원래는 한국 분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서명이었는데 적지 않은 일본 거주 분들도 서명해 주었다. 항의 의사를 함께 나타내 주신 것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7월 1일 출판기념회에는 박유하 본인이 촬영진과 함께 나타났다(자세한 것은 한겨레보도 참조). 이 때문에 나는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의 요지를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하지만 30분 가까운 시간을 낭비했으면서도 박유하는 여전히 오독하고 있다는 말을 반복할 뿐, 내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일본의 미디어는 논의의 내용은 전하지 않고, 그 자리가 험악해졌다는 것을 소개하는 기사만을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내 입장에서 보면, 박유하의 언동은 참가자들을 격앙시키기에 충분했는데도 주최자나 참가자는 최대한 정중히 대우했다고 생각한다. 질문에 답하지 않는 박유하의 자세를 보다 못한 참가자들이 빨리 질문에 답하라고 재촉하는 목소리가 났지만,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나도 입국을 못하고 겨우 중계로 연결된 독자와의 대화 시간을 허접한 대화로 박유하가 빼앗은 것(지정토론자를 제외하면 회장에서 발언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성실한 응답을 하지 않는 박유하의 오만불손한 자세에 평상심을 잃었지만, 귀중한 자리를 준비해 준 주최자를 위해서도 참았다. 애당초 출판기념회에 촬영진을 데려와서 촬영을 하는 신경을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자신의 다큐멘터리용인 듯하다), 그것은 덮어두자.

 

 최근의 박유하의 언동 중에서 도저히 좌시할 수 없는 것은 내 입국 불허 가처분에 대한 발언이다. 근래 박유하는 내 입국 거부 판단이 타당하다는 듯이 암시하는 발언을 반복했다. 거부 처분 직전인 6월 28일에 박유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정영환씨는 한국과 북한에서 정치적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입국이 불허된 사람이다. 국가가 개인의 이동의 자유를 관리하는 일에 나는 비판적이지만, 이들의 담론이 한일화해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내비치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정영환의 두려움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남들이 나를 빼고(그의 표현에 따르면 망각하고) 화해할까 봐 두려워하기보다는, 재일교포사회와 일본과의, 혹은 북한과 일본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2016년 6월 28)

 

 박유하다운 문장이다. “국가가 개인의 이동의 자유를 관리하는 일에 나는 비판적이지만이라며 노골적인 반공주의자로 여겨지지 않도록 예방선을 치는 한편, 내가 한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정치적 활동을 했기 때문에 입국이 불허되었다는 한국정부 당국의 설명을 그대로 흘리며, 그래서 한일화해에 우려를 표명하는구나 하며 근거 없는 추론을 제시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나의 화해비판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듯한, 그리고 입국 불허에도 상당한 이유가 있는 듯한 인상을 품을 것이다. 하지만 박유하는 넌지시 말할 뿐이므로 그 책임은 이 글을 읽은 독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극히 무책임한 문장이다.

 

 이 투고에는 상당한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유하는 다음날이 되자 다음과 같은 변명을 했다.

 

나는 국적을 갖지 않는 것을 택한 조선적 분들을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정점에 작가 김석범 선생이 있고, 내가 조선적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도 그 분을 통해서였다.

내가 언급한 건 오로지 한국정부의 판단이다. 쓰여 있지 않는 비난을 굳이 읽어내 비난하는 이들의 행위는, 위안부는 원래 일본인이 대상이었고 국가에 의해 이동당한 가난한 여성이라는 의미로 조선인 위안부는 가라유키상의 후예라고 썼더니 그건 매춘부라는 뜻!’이라면서 판금[삭제 요구를 가리킬 것이다]을 요구한 지원단체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2016년 6월 29)

 

 조선적자인 김석범을 존경하는 내가 조선적자를 차별할 리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자신은 정영환이 아니라 정부를 비판했다고 쓰기도 했다. 지금도 고소한 것이 위안부피해 당사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그 자세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어이가 없는 것은 위의 문장에서 의도한 것이 한국정부 비판이라는 변명이다. 이 글을 읽고 박유하가 나의 입국 불허 가처분을 비판했다고 생각할 독자는 아마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멋대로, 깊이, 비틀어 읽기라고 비난하며 냉전후유증으로 병들어 있는 우리사회의 단면일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 또한 제국의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만약 박유하의 진의가 독자의 이해와 다르다면, 그 책임은 글쓴이인 박유하 자신에게 있다.

 더욱이 박유하는 이 투고에서도 내 입국 불허가 타당한 듯한 암시를 지속하고 있다. 박유하는 투고 말미에서 정영환문제(!: 인용자)에 대한 참고자료로 조관자 선생의 논문을 올려 둔다. 재일교포/조선적에 대해 말하려면 이 논문은 필수적으로 읽혀야 할 것이다. 입국제한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6절이 자세하다.”고 하면서 조관자의 논문(조관자, 재일조선인 담론에 나타난 기민(棄民)의식을 넘어서: ‘정치적 주체성을 생각하다, 통일과평화7/1, 2015의 링크를 달았다.

 

 조관자는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조교수로 일본어 저서도 있는 조선근대사상사 연구자다. 박유하가 참조할 것을 추천한 조관자 논문 제6절에는 내 입국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주와 함께 인용한다.

 

이라크 전쟁으로 고양된 반미 운동의 현장에서 조선적의 재일조선인들이 북한의 반미, 통일 구호와 일치하는 내용을 그대로 외치는 경우도 있었다.54)(209)

 

54 필자는 재일조선인 정** 씨를 일본에서 본 적이 있다. 2006년 겨울로 기억하는데, 당시 대학원생이던 그가 도쿄의 어느 한 출판기념회에서 평택의 반미집회에 참가한 경험을 피력했다. 일본에 거주하며 마침 정** 씨의 연설을 듣게 된 필자는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재일조선인 청년이 평택 주민들 앞에서 북한의 어법으로 미군철수를 외치는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렸고, 한국의 변화와 정권의 관용성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보수진영의 탄핵심판이 국민적 반발 속에서 수포로 돌아간 정치 국면에서, 2005년부터 북한은 한국의 인터넷 공간 등에 반미 민족주의 평화 공세를 적극 펼치고 있었다(필자는 당시 오마이뉴스등에서 북한의 인터넷 부대를 포함한 해외동포의 필치가 느껴지는 댓글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감지했다). 필자는 정**씨가 결코 위협적이거나 무모한 사람이 아니며, 그의 학술 활동은 허용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의 반미 민족주의가 남한에서 생생하게 재현되는 것을 탈분단으로 생각할 수 없으며, 지금까지 전개된 조선적의 통일표상과 통일운동을 수긍할 수 없기 때문에, 조선적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정부의 입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210-211)

 

 혹시나 해서 설명해 두는데, 이것은 공안경찰의 보고서가 아니다. 서울대학교 연구소 기요에 실린 버젓한 학술논문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여기에서 말하는 **는 나를 가리킨다(논문의 기초가 되었던 학회 발표에서는 이름도 실려 있었다고 한다). 조관자의 이논문은 박유하가 말하는 재일교포/조선적에 대해 말하려면 이 논문은 필수적으로 읽혀야 할종류의 질을 가진 것이 아니라, 위의 인용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치안당국의 시점에 동일화한 입장에서 쓰인 극히 이데올로기색이 짙은 재일조선인론이며 솔직히 말해 연구로서의 가치는 제로다.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것은 내가 처음으로 한국에 입국한 2005년의 일을 가리킨다. 한국에 간 것은 서울대학교에서 개최된 어떤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표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심포지엄 관련 행사로 당시 미군기지 이설 예정지로 되어 있었던 평택 필드워크가 기획되었다. 나도 여기에 동행하여 지역에서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과의 교류회에도 참가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감상을 발언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처지라 내 땅이라는 감각을 실감으로 느낀 적이 없어서 여러분들의 땅에 대한 마음은 상상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반미, 통일 구호와 일치하는 내용등의 엄청난 것은 아니다.

 

 더욱이 조관자는 글에도 있듯이 이 행사에도 필드워크에도 동행하지 않았는데, 나의 일본에서의 발언을 통해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재일조선인 청년이 평택 주민들 앞에서 북한의 어법으로 미군철수를 외치는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고 한다. 조선적의 재일조선인들이 북한의 반미, 통일 구호와 일치하는 내용을 그대로 외치는 경우도 있었다는 기술의 근거는 조관자의 상상인 것이다. 더욱이 그 학술활동은 허용하지만(당연하다), “조선적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정부의 입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주장하며 사실상 내 입국 불허를 시인하고 있다. 조관자 논문의 나에 관한 기술은 이상과 같은 것이다.

 

 박유하가 조관자 논문을 참조하도록 지시함으로써 한국의 독자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싶었는지는 명확할 것이다. 박유하는 처음에 내 입국 불허 가처분을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독자에게 주었고, 그것을 비판받자 자신은 한국정부를 비판했다고 무리한 변명을 하면서도 동시에 내 입국 불허를 시인하는 논문의 참조를 독자에게 요구한 것이다. 얼마나 박유하가 내 입국 불허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는지를 알 수 있다. 서두에서 인용한 동아시아 평화를 현재 이상으로 훼손하게 될 것이라는 내 책에 대한 평가도 그렇지만, 요 며칠 동안 박유하는 일관되게 내 입국문제를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치안의 시점에서 생각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논쟁의 상대에 대한 이러한 수단을 사용한 보복은 절제해서 말해도 비열하다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거듭 이 자리를 빌어 항의한다.

 

 과연 동아시아 평화를 훼손하는 것은 내 책인가, 그렇지 않으면 박유하의 이러한 자세인가. 대답은 명확하지 않을까. 서두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7월 11일에 박유하는 기자간담회를 한다고 한다. 안이한 반공주의적 딱지 붙이기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의 저서에 대한 비판에 대해 성실히 응답할 것을 요구하고 싶다. 이것은 나와 박유하 사이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무엇보다 제국의 위안부에 의해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영환)

 

원문: 「東アジアの平和を毀損する」のは誰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