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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화해를 위해서』를 둘러싼 '논쟁'을 돌아보다(2・끝)

박유하『제국의 위안부』

 

3. 서경식의 비판과 반비판

 

① 서경식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이어서 서경식의 『화해』 비판을 검토하자. 서경식의 논고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박유하 『화해를 위해서』 비판」(이하, 인용은 『식민주의의 폭력』, 高文研, 2010)은 세계적인 식민지 지배 책임을 둘러싼 논쟁에 입각하여 박유하 『화해』의 오류와 문제점을 자세히 밝힌 것이다. 저작으로서의 『화해』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이 책이 ‘리버럴’을 자칭하는 일본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통 · 소비되는 이유에까지 분석이 미치고 있다.

서경식은 90년대 초에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하여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묻는 피해자 증인이 나타나 가해국의 책임을 물었지만("증언의 시대"), 일본에서는 90년대 중반 이후 '반동의 시대'에 돌입하고 "일본 식민지 지배의 피해자들은 우파나 역사수정주의로부터의 폭력뿐만 아니라, 중간파 주류로부터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에까지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75쪽).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박유하 『화해를 위해서』가 일본에서 “이상할 정도로 환영받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서경식의 『화해』 비판의 논점은 다방면에 걸쳐 있지만, 무엇보다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한일 '불화'의 원인은 한국 측의 내셔널리즘에 근거한 대일 '불신'에 있다는 박유하의 주장이다. 박유하는 일본이 어떤 사과를 하든, "불신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떠한 형태든 사과는 받아들여지지 않”으므로, "화해 성립의 열쇠는 결국 피해자 측에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주장한다(『화해』, 238쪽). 박유하는 서경식의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에 대해 “문제는 이러한 인식 자체도 그렇지만, ‘일본의 주류’에 대한 비판이 한국의 리버럴 ​​신문에 크게 실리고 한국의 리버럴 ​​시민이 일본에 대해 한층 불신에 빠지도록 촉구하는 점이다"(박유하, 「’사이에 선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147쪽)라고 비판했는데, 어쨌든 대일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 박유하에게 가장 중요한 '해결'에의 길인 것이다. 하지만 서경식은 이것을 “원인과 결과가 의도적으로 전도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불신이 있기 때문에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기 때문에 불신이 증폭되어 온 것”이라고(87쪽).

박유하의 논리 "전복"에 대해서는, 김부자도 비판을 하고 있다. 김부자는 『화해』의 또 다른 문제로, "일본 정부나 국민기금은 높이 평가하는 한편, 그것에 부정적인 자세를 취한 한국, 특히 한국 정대협의 운동 자세를 혹독하게 지탄"하는 것을 든다(김부자, 「’위안부’ 문제와 탈식민주의」, 107쪽). 그리고 국민기금의 거부를 "일본에 대한 본질주의적인 불신" 탓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민기금이 피해자들의 반발을 산 것은 “국민기금이 글자 그대로 사과로서 '불충분'했기 때문"이며, 오히려 문제시해야 할 것은 "피해자나 피해 국가에 불필요한 분열과 갈등을 초래한" 국민기금의 "애매한 금전에 의한 해결이라 방법"이다. 박유하처럼 "그 책임을 피해자나 지원운동에 전가하는 것은 본말전도"(108쪽)라고 김부자는 지적한다.

나아가 서경식은 『화해』가 환영받은 배경으로 박유하와 같은 주장을 갈망하는 "일본의 리버럴파"의 "숨은 욕망"을 본다. 박유하 논의의 전제에는 "큰 틀에서는 일본은 한국이 사과를 받아들일만한 노력을 했다"(『화해』, 238쪽)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일본은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내셔널리즘에 사로잡힌 '불신'때문이다. 국민기금에 대한 반발도 피해자의 오해 탓이며, 이러한 오해를 낳게 한 "지원자/지원단체"의 탓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이러한 "논리"를 환영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대해 서경식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들(일본의 리버럴​​: 인용자 주)은 우파의 노골적인 국가주의에는 반대하며, 자신들을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인 우파와는 구별되는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라고 자임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홋카이도, 오키나와, 타이완, 조선 그리고 ‘만주국’으로 식민지 지배를 확대하면서 근대사의 전 과정을 통해 획득된 일본 국민의 국민적 특권이 위협받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중략) 우파와 선을 긋고 있는 일본 리버럴파의 다수는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를 자임하는 명예 감정과 구종주국 국민으로서의 국민적 특권 모두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 두 가지를 확보하는 길은 피해자 쪽이 먼저 나서서 화해를 제안해 주는 것이다."(93쪽)

 

즉, 박유하의 논의는 서양을 포함한 "선진국의 주류" 공통의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는 목소리를 봉쇄하려는 심성에 친화적인 '화해'론이며, “그것은 바로, 식민지주의라는 세계사적 조류에 대한 반동의 한 현상"(97쪽)이라고 서경식은 지적한다. 서경식의 『화해』 비판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밖에도, 박유하가 말하는 '화해'의 주체에는 북한과 재일조선인이 들어 있지 않은 점이나, 한일조약을 비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주장의 문제점 지적(*1) 등, 서경식의 비판은 다방면에 걸쳐 있다. 웹에서도 읽을 수 있으므로 일독을 권한다.

아울러, 서경식의 『화해』 비판은, 서경식이 90년대 후반에 적극적으로 전개 한 “반동적 국면”을 뒷받침하는 '리버럴​'에 대한 비판의 연장 선상에 자리 매김되는 것이다. '새역모'와 고바야시 요시노리로 대표되는 역사수정주의적인 면책론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구성주의적 국민관에 서서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을 선구적이고 직접적으로 지적했던 서경식의 시점에서 보면, 박유하의 담론이 가지는 문제점은 너무나 명료했을 것이다. "반동적 국면”에 대한 서경식의 일련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서도 이전에 다루었기 때문에 함께 일독하시기 바란다.

 

* 참고

「서경식을 다시 읽다: "반동적 국면"과 현재 (1)」

「서경식을 다시 읽다: "반동적 국면"과 현재 (2)」

 

서경식의 이러한 『화해』 비판에 응답한 것이 박유하  「'우경화' 원인 먼저 생각해봐야: 서경식 교수의 '일본 리버럴' 비판, 이의 있다」(『교수신문』, 2011년 4월 18일자)이다.

박유하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중략) 『화해를 위해서』는 서 교수가 말하는 “식민지배 책임을 묻는 세계적 조류”와 무관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기금 역시 마찬가지다. 위안부 문제란, 서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설사 ‘강제로’ 끌려가지 않았다 해도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배 구조 속의 일이다. 그런데 그런 지적은 이미 6년 전에 『화해를 위해서』에서 내가 한 말이기도 하다. ‘법적으로’ 1965년에 식민 지배에 대한 보상이 끝났다 하더라도, 1990년대에 정부가 예산의 반을 출자하며 다시 보상을 한 것이었으니 ‘국가 보상’의 형태를 취했으면 좋았을 거라고도 나는 분명히 썼다, 그러나 서 교수는 나의 책에 그런 지적이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글쓰기가 내 책이나 ‘일본 리버럴‘에 식민 지배 책임의식이 없는 것으로 독자들이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내 책의 내용 절반이 일본 우파 비판이라는 것을 고작 한 줄로 처리하는 것도 그런 글쓰기의 결과다.

 

글의 뜻을 해독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굳이 요약하면 박유하는 ① 국민기금은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는 세계적 조류"에 따른 것이다, ② 국민기금은 '국가 보상'의 형태를 가졌으면 좋았다고 주장했지만 서경식은 그것을 무시했다, ③ 서경식의 글쓰기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일본 리버럴"에 대한 "불신"을 심고 있다는 세 가지로 정리 될 것이다. ①과 ②의 요약이 타당하다면, 본래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일 터인데, 박유하의 글쓰기가 애매해서 취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서 이것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적어도 박유하가 『화해』에 이어서 '국민기금'이 '보상'이었다고 인식하고, 그것을 근거로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는 세계적 조류"에 따른(무관하지 않다?)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다람쥐 쳇바퀴 같은 격이 된다. 이미 니시노 루미코가 지적했듯이 ‘국민기금’의 ‘보상 금액(償い金)’이 ‘보상’이 아니라는 것은 정작 일본 정부가 거듭 주장하는 것이다. 국민기금 부이사장이었던 이시하라 노부오가 "이것은 배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ODA처럼 인도적 견지에서 일정한 지원 협력을 의미합니다"라고 언급하는 것이다(니시노 루미코, 「피해자 부재의 '화해론'을 비판한다」, 니시노 루미코 · 김부자 · 오노자와 아카네 책임 편집, 『'위안부 '비난을 넘어서: '고노 담화'와 일본의 책임』, 大月書店, 2013, 138쪽). 박유하 그것을 억지로 ‘보상’이라고 바꾸어 말해, 피해자가 ‘오해’한 것처럼 강변한다. "애초의 오해는 『화해』가 모든 것을 "강물처럼 흘려보내고” 새로운 “사죄와 보상” 없이 문제를 종결시키려고 하는 논의로 받아들여졌던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박유하, 「’사이에 선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144쪽)고 하지만, 박유하가 ‘보상’에 대해 기묘한 해석을 하는 이상, 논의 같은 것은 성립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박유하가 이 반론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③이다. 위에 이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이나 그 밖의 일본사회의 모순을 모두 일본 리버럴까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었기 때문으로 단정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폭력’적이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에 대해 간단히 ‘반동’의 딱지를 붙이는 ‘폭력’은 그가 말하는 ‘세계 평화’의 기반이 되어야 할 ‘신뢰’ 아니라 ‘불신’을 조장할 뿐이기 때문이다. ‘일본 리버럴’의 ‘우경화’를 비판하려면, 무엇이 그들을 ‘우경화’로 몰고가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일본 리버럴’을 적으로 돌리는 것 보상을 한층 어렵게 만들 뿐이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이상한 것은, 왜 “일본 리버럴까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었기 때문으로 단정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폭력’적이고 ‘위험’”한 것인지가 전혀 설명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 리버럴’(누구?)을 비판하는 것은 '불신'을 조장 할 뿐이라는 주장이 반복되어 있을 뿐이다. "무엇이 그들을 '우경화'로 몰고가는가”――박유하에 따르면 서경식 같은 (그리고 정대협 같은) 비판이야말로 '일본 리버럴'을 '우경화'로 몰고가는 것이리라.

이 논법은, ‘일본 리버럴’ 당사자들을 박유하가 실제로는 완전히 깔보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 한해서는 ‘일본 리버럴’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어 흥미롭다. 서경식에 대한 반론에서, 박유하는 ‘일본 리버럴’의 사상과 행동에 입각한 반비판을 시도하지 않았다. 만일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이나 그 밖의 일본사회의 모순을 모두 일본 리버럴까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었기 때문으로 단정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폭력’적이고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제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아마도 곤란한 작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박유하는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우경화'로 몰고가”므로 비판을 삼가라고 한다. 너무 비판하면 도리어 화를 내니까, 적당히 하고 '화해'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박유하에 따르면 ‘일본 리버럴’이란 이토록 유치한 집단인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집단과의 ‘신뢰’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서경식의 ‘리버럴’ 비판이야말로 옳지 않을까. 역시 '화해'의 주체에 재일조선인이 배제되어 있지 않은가. 박유하는 서경식의 지적이 정당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2)

  

4. 맺음말

 

『화해』를 둘러싼 '논쟁'은 이렇게 박유하가 비판에 충분히 답하지 않은 채로 끝나고 무대는 『제국의 위안부』로 옮겨가게 되었다. 앞에서 살펴본 서경식에 대한 박유하의 반론은 다음의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나는 2010년에 일본의 신문에 쓴 칼럼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썼다. 또한 보상을 거부하는 우파의 사고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책을 준비 중이다. 다만 서 교수와는 다른 방식의 서술이 될 것이다. 낙인 찍기와 선입견으로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연 『제국의 위안부』는 “낙인 찍기와 선입견”을 극복한 저작이 되었을까. ‘보상 금액’이 ‘보상’이라는 충분한 이유를 제시했을까.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독특한 이해에 대해, 설득적인 설명이 주어졌는가. 대답은 아니다이다. 오히려 『제국의 위안부』는 한일협정에 의한 '경제협력’은 '보상'이었다는 놀라운 주장을 추가하여 더욱더 혼미한 늪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가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살펴본 대로이다. 마지막으로 『제국의 위안부』가 『화해』에 대한 이러한 비판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제국의 위안부』가 앞에서 살펴본 김부자의 비판을 비롯해 대부분의 내용에 대한 비판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참고문헌에조차 넣지 않은 점이다. 사실상 무시하기로 결심했다고 보아도 좋다. 『화해』에 대한 비판은 『제국의 위안부』 한국어판에만있는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화해를 위해서』는 반은 위안부 문제나 식민지지배에 대한, 이른바 '우익'의 사고와 행동에 대해 비판적으로 쓴 책이었다. 그러나 그 책을 비판한 이들은 아무도 내 책 안의 우익 비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저 진보 진영의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만을 들어 격하게 비난했다./비판자들은 일본에서 내 책이 높이 평가된 것(아사히 신문사가 주최하는 '오사 라기 지로 논단상' 수상)을 두고 일본이 우경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고, 내가 마치 일본의 우익과 비슷한 주장을 한 것처럼 취급한다."(317쪽)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하는 것은 이제 와서 그들을 새삼스럽게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진보 측의 이런 대응은 '정의'의 편에 서 있다는 자기확신이 만든 것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런 식의 자기확신이 때로는 경직된 자세와 무책임한 폭력을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본문에서도 말한 것처럼 그런 식의 사고에 바탕한 비난이 일본 정부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행해지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20년의 세월이 일본의 안의 혐한파를 늘려 놓았다.(318쪽)

 

그 외에, 한 진보 매체 기자의 무단 녹음이나 “지원단체의 어떤 자”의 ML에 대한 무단 투고, 혹은 한 신문기자가 “일본 우익의 찬사를 받았다”고 잘못 소개한 것 등을 들어 자신이 얼마나 비판 파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는지가 계속 서술되어 있지만, 『화해』의 내용에 대한 비판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서경식의 비판도 “한국에서 명망 높은 어떤 재일교포 작가”가 “어느 날 갑자기 「화해라는 폭력」이라는 칼럼을 대표적인 진보 신문에 쓰고도 했다”고 애매하게 처리한 후 (318쪽), 비판에 대한 반론이 이루어지지도 않고, 계속해서 일본 비판이 '혐한파'를 늘렸다는 주장이 언급될 뿐이다. 일본어판에서 「후기」조차도 삭제되어, 비판의 존재 자체가 삭제되어 버렸다.

이러한 대응은 공정함을 결여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화해』에 대한 비판은 단순한 우경화 비판이 아니라는 것은 박유하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터이다. 서경식은 “『치맛바람』의 저자 오선화(吳善花)가 『산케이 신문』 독자층인 우파의 수요를 충족시켰다면, 박유하는 『아사히 신문』의 독자인 리버럴파의 수요를 충족시켜 주는 존재라 할 수 있다”(96쪽)고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내용에 입각한 비판에 제대로 답하지 않고 ‘선입견’에 입각해 비판자에 대한 ‘낙인 찍기’를 하고 끝내는 것은 박유하 자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의 위안부』에는 이처럼 소모적인 전사가 있었다. 『화해』를 둘러싼 '논쟁'의 시점에서 이미문제는 대체적으로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무대'가 주어진 것의 이상함이야말로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주】

(*1) 한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일협정 비판은 '무책임'하다는 박유하의 주장에 대해, 서경식은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비판한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국내의 군사독재 반대운동을 탄압하면서 맺은 것이다. 이 조약은 냉전체제하에서 강요된 불평등조약이라 할 수 있다. 박유하에 따르면, 이를 고치자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그렇다면 미일안보조약에 반대하는 일본인들도 무책임하다는 것일까?/박유하에게 책임 있는 지식인이란, 예를 들면 아무리 반인권적이고 비인도적이어도 국가가 일단 맺은 조약에는 마지막까지 묵묵히 따르는 사람을 말하는 듯하다. 이 정도로 국가권력을 기쁘게 하고 식민지 지배자나 그 후계자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레토릭은 없을 것이다.(83쪽)

 

 박유하의 논리에 따르면 나카이마(仲井真) 지사가 헤노코 매립을 ‘승인’했으므로, 기지건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책임’한 것이 된다.

 

(*2) 그런데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박유하는 2009년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었다.

 

그때부터 일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은 전후 60여 년 지속된 자민당 정권이 끝나고, 민주당 정권이 되었다. 그렇다면 다시 이러한 부정적인 ‘현상 인식’ 자체가 문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식민지 시대와 전후에 대한 '역사 인식'도 다시 추궁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확실한 것은 한국의 내셔널리즘이 고양되면, 이번에는 일본의 우익 내셔널리즘이 발동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책임의 주체’와의 대화는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다.(박유하, 「’사이에 선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147쪽)

 

이 글이 발표된 것은 2009년 10월, 즉 하토야마 내각 출범 직후이다. ‘일본 리버럴’을 비판하지만, 실제로 일본은 '정권 교체'하지 않았는가, 서경식과 같은 “부정적인 ‘현상 인식’”과 “전후에 대한 ‘역사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 이렇게 박유하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정권 교체'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미군기지 문제, 조선고교 무상화 문제 등, ‘일본 리버럴’이라는 집단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노정한 후, 끔찍한 결말을 맞고 극우과점체제로 귀결되지 않았는가. 그것도 박유하에 의하면, 그것은 한국이 '위안부' 문제를 너무 강조하여 ‘일본 리버럴’을 우경화시켰기 때문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박유하의 지시대로 한국 사람들이 행동한다면, 일본은 '우경화'하면 할수록 한국에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게 되므로, 오히려 '우경화'는 합리적 선택이 되지는 않을까.

 

(정영환)

 

원문: 朴裕河『和解のために』をめぐる「論争」をふりかえる(2・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