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문제의 현재와 "제국의 위안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추측컨대 박유하의 담론이 일본 자유주의파의 ​​감춰진 욕망에 정확히 들어맞기 때문일 것이다.
서경식「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 박유하『화해를 위해서』비판」(『식민지주의의 폭력』高文研, 2010년)

마치 데자뷰를 보고있는 것처럼 과거와 같은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우파가 시끄럽게 "위안소" 제도에 대한 일본군과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부인하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을 한창 벌이고 있는 사이에, 일반적으로 "우파"로는 인식되지 않았던 미디어, 언론인이 한권의 책을 격찬하고 있다.
"유하가 하려고 한 것은 위안부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다양한 서로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박유하가 듣을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

(다카하시 겐이치로『아사히 신문』, 2014년 11월 27일)

 

"이 책은 '위안부'를 논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자 가장 심각한 내용입니다. 이제부터 '위안부'에 대해 쓰려고 한다면, 박유하 씨의이 책을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그리고 제가 아는 한, 이 책만이 절망적으로 보이는 한일 화해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 Twitter, 2014년 11월 27일)

 

"어려운 상황 속에서 복잡한 문제에 최대한 공정하게 마주하려고 한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이 문제제기에 일본 측이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가 제기되고 있다."

(스기타 아츠시『아사히 신문』, 2014년 12월 7일)

 

『화해를 위해서 - 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2006년)에서 오사라기 지로 논단 상을 수상한 한국 세종대학교 교수가 위안부들의 다양한 다른 목소리를 들으면서 대립하는 좌우 논쟁의 문제점을 생각했다. 

(기시 도시미츠『마이니치 신문』, 2014년 12월 28일)

 

위안부 문제로 빛났던 것은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일본어판)이었다. 식민지의 고향을 떠나 일본 여성의 대체품으로서 전장에 놓인 여성들의 무겁고 다양한 현실을 고찰 하였다.

위안부는 물리적으로 강제당했는가 아니면 자유의사였는가, 당신은 애국자인가 비애국자인가--그런 이분법의 논의와 차별화해나가기 위한 길을 '제국'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박유하는 보여 주었다. 식민지 출신 위안부는 제국 지배의 피해자인 동시에 제국의 협력자로서의 성격도 띠는 복잡한 입장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시오쿠라 유『아사히 신문』, 2014 년 12 월 30 일)

 

"이 문제에 대해 피해 갈 수 없는 책의 일본어 버전이 드디어 나왔다. 박유하 씨의 『제국의 위안부』이다. 한국에서는 원래 '위안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해서 출판 금지 소송이 일어난 논쟁적인 책이다. 이전의 저서 『화해를 위하여』(헤본샤)에서 나는 "굳이 불 속의 밤을 줍는다"는 제목의 해설을 썼는데, 본서도 그대로의 책, 그보다 스스로 "불 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책이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화상를 입지 않을수 없다."

(우에노 치즈코『마이니치 신문』, 2015 년 1 월 20 일)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를 열심히 다 읽었다. 이것은 굉장한 책​​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우파, 일본의 좌파에 대한 비판은 혼신의 것이다(정확히는 우파, 좌파라고 부르면 안 되지만, 일단 이렇게 쓴다). 이 책에서 뭔가 새로운 차원이 열릴지도 모른다. 나는 지지한다.
(모리오카 마사히로, Twitter, 2015 년 2 월 14 일)

 

과거에 『화해를 위하여』를 향한 비판에 저자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또는 응답하지 않았는지) 검토조차 없이 본서를 칭찬하는 논자들에 놀랄 수밖에 없다. 우파 언론과 논자가 대체로 이 책을 무시하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하는("저자의 역사관은 낡고 논리가 혼란하다"고 하는 이케다 노부오 등) 상황에서는 이 책이 "중립적"인 것으로 수용될 가능성이 높다.

 

『제국의 위안부』와, 역시 작년에 발간된 『위안부 문제』(쿠마 나오코, 치쿠마 신서), 『한일 역사인식 문제란 무엇인가』(기무라 간, 미네르바 서방)의 3권에 공통된 것은 이 문제의 역사에서 일본의 우파가 수행한 역할을 매우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3권은 "역사인식문제가 악화된 것은 한국의 잘못이 아닌가"라는 이 사회의 다수에게 널리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감각을 "확증해 주는" 것이 되어 있다.

 

패전 이후 70년,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올해, 『아사히신문』에 의한 일부 보도 철회에 따라 "위안부"의 강제연행 사실은 부정되고 성적 학대도 부정되었다"(자민당·국제정보검토위원회의 결의)고 주장하는 극우 노선과는 별도로, 더 "현실적"인-- 무엇보다도 미국의 반대를 초래하지 않는-- 형태로 이 문제의 "해결"을 보려는 시도가 이 사회의 지배층에 의해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표면화된 몇 가지 사실의 단편에서 떠오르는 것은 아시아여성기금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노선이며, 그를 위해 아시아여성기금을 비판해 온 지원자들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 획책되지 않을까. 이러한 노선에 대한 지지를 얻는 데에 『제국의 위안부』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본서가 안고있는 문제점에 대해 가능한 빨리 또한 가능한 한 널리 정보 발신 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원문>日本軍「慰安婦」問題の現在と『帝国の慰安婦』

http://readingcw.blogspot.jp/2015/02/blog-post_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