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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제국의 위안부』의 ‘방법’에 대하여(4)

본서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의 ‘책임’에 대해 극히 한정적으로밖에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라는 것을 앞 글에서 보았다. 그렇다면 군의 책임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위안부’ 여성들의 권리, 그 중에서도 ‘개인의 청구권’에 대해서는 어떠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을까. 본서의 ‘청구권’ 인식은 아래와 같다.

 

(1)인신매매의 주체는 업자이지 일본군이 아니다. 따라서 ‘위안부’ 여성들에게는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없다.

(2)‘위안부’ 여성들의 청구권은 한일회담에서 한국정부에 의해 포기되었다. 따라서 ‘위안부’ 여성들에게는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없다.

 

제4장 「한국 헌법재판소 판결을 읽다」는 이상의 두 가지 주장을 한국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제시한 장이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2011년 8월 30일에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위안부 여성들의 청구권이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아니하고 있는 피청구인의 부작위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제4장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이 ‘판결’의 타당성이다.

 

박유하는 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지원단체’의 인식에 의거한 부정확한 것이며, 결정을 계기로 시작된 “’외교적 해결’ 시도는 한일 관계를 악화시켰을 뿐이다”(196쪽)라고 극히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이하, 헌법소원심판의 쟁점을 확인한 후에 그 논거와 논리의 문제점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1. 헌법소원심판의 쟁점

 

우선은 헌법재판소 결정을 둘러싼 쟁점을 확인해 보자. 2006년 7월 5일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64명”(=청구인)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했는데, 청구 요지를 「결정」은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원문과 일본어역 및 관련 자료는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女たちの戦争と平和資料館) 「한국 헌법재판소 결정 ‘위안부’ 전문(韓国憲法裁判所決定「慰安婦」全文)에서 열람할 수 있다).

 

“청구인들은,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가지는 일본군위안부로서의 배상청구권이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일본국은 위 청구권이 위 규정에 의하여 모두 소멸되었다고 주장하며 청구인들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고 있고, 대한민국 정부는 청구인들의 위 청구권은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어서, 한・일 양국 간에 이에 관한 해석상 분쟁이 존재하므로, 피청구인으로서는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위와 같은 해석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2006. 7. 5. 이러한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배상청구권의 유무에 대해 한일 양국에 명확히 분쟁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청구권협정 제3조에 규정된 해결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러한 ‘부작위’는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위헌이다. 이것이 피해당사자들의 주장이었다. 즉 헌법소원심판의 쟁점은 청구권협정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지 않는 한국정부의 부작위의 위헌성 유무였다.

 

한국정부의 반론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한국정부는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았다. 본래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기본권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으며, 전시기 불법행위의 주체는 일본정부이지 한국정부가 아니다. 따라서 청구권협정에 따른 국가의 구체적 작위의무까지는 인정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한국정부는 ‘청구인들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한국정부에 구체적인 외교조치를 취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 외교보호권의 주체는 국가이므로 개인이 자국 정부에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헌법상의 기본권이 아니다. 또한 외교보호권 행상 등에 대해서는 국가의 광범위한 재량권이 인정되므로 구체적인 외교조치를 취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도 확실하듯이, 심판대상이 된 쟁점은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가지는 일본군위안부로서의 배상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에 이에 관한 해석상 분쟁을 위의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않고 있는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였다. 일본군의 행위가 어떠한 것이었는지, 그것이 국제조약에 반하는 것이었는지, 청구인들의 배상청구권은 인정되는지 등등의 논점에 대해 피해 당사자와 한국정부가 논쟁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헌재는 청구인의 주장을 수용하여 2011년 8월 30일에 결정을 내렸다.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해 가지는 일본군 위안부로서의 배상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아니하고 있는 피청구인의 부작위는 위헌임을 확인한다”

 

‘위안부’ 피해 당사자의 배상청구권을 둘러싸고 청구권협정의 해석상의 분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 정부의 부작위는 헌법위반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결정’의 논리의 상세한 부분은 원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한국정부가 다해야 할 국민의 외교적 보호의무를 아래와 같이 헌법 전문을 하나의 중요한 근거로서 인정한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한국 헌법은 전문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의 계승을 밝히고 있는바,설령 한국 헌법이 제정되기 전의 일이라 해도,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를 수행할 수 없었던 일제강제점령기에 일본군위안부로서 강제동원되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말살된 상태에서 장기간 비극적인 인생을 보낸 피해자들의 훼손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해야 하는 의무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지금의 정부가 국민에 대해 짊어져야 할 가장 근본적인 보호의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1. 헌법재판소 「결정」 이해의 문제점

 

그렇다면 본서가 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어떻게 논했는지 보자. 우선은 위에 든 박유하의 첫 번째 주장(인신매매의 주체는 업자이지 일본군이 아니다. 따라서 ‘위안부’ 여성들에게는 일본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없다)에 관련된 부분부터.

 

박유하는 청구인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부분이지만 재인용한다.

 

“이 청구의 근거는 처음에 있듯이 ‘부녀자 매매 금지 조약’에 일본이 위반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리고 피해를 입은‘개인’의 ‘손해배상’이 청구되지 않았다고 한다. 즉 ‘부녀 매매’의 책임주체를 일본국가에게만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인신매매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업자였다. 일본국가에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공적으로는 금지하면서 실질적으로는(……)묵인한 (……)것에 있다. 그리고 나중에 보는 바와 같이 이와 같은 ‘권리’를 말소한 것은 한국정부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때 외교통상부는 피해자가 일본의 배상을 받도록 움직이는 것이 정부의 의무가 아니므로 정부가 헌법 위반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180쪽)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박유하가 헌법소원의 쟁점과는 달리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관한 사실인정의 레벨에서 일본국가의 책임을 부정하고 있는 점이다. 앞 글에서 보았듯이 박유하는 이러한 ‘책임’ 있는 일본국가의 행위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청구인들의 배상청구권을 애초에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즉 박유하는 인신매매의 주체는 업자였기 때문에 일본국가에 법적 책임은 없으며, 청구인들에게 배상청구권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헌법소원에 입각해서 말하면, 한일 양국 간에 청구권의 유무를 둘러싼 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일 것이다.

 

이것은 피청구인이었던 한국정부의 입장과도 다른 박유하의 독자적인 주장이다. 박유하는 “5년이나 걸린 재판 끝에 재판소는 소송자들의 편이 되었다. 재판소가 일본국가만을 책임주체로 삼는 인식에 동조한 셈이 되었다”(180쪽)고 마치 한국정부가 자신과 동일한 주장을 한 것처럼 쓴다. 하지만, 내용을 읽으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피청구인인 한국정부는 물론 이러한 반론을 한 것이 아니다. 한국정부의 외교가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언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의 두 단락은 전반부를 증명하는 논거로서 외교통상부의 주장이 있는 것처럼 기술되어 있지만, 말 그대로 “실제로”는 이 두 단락은 완전히 다른 것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결정」이 인용하고 있듯이, 한국정부는 과거에 한일청구권협정에서는 “일본정부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반인도적 불법행위’는 해결되지 않았고,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이 인정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2005.8.26 「민관공동위원회」 결정). 결정에 대한 소수의견을 진술한 재판관의 주장도, 마찬가지로 박유하의 주장(청구인에게는 애초에 배상청구권이 없다)에 동조하는 것처럼 인용되어 있지만(195-196쪽), 어디까지나 한국정부의 의무에 대해 논한 것이지 청구인들의 배상청구권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외교통상부의 반론과 마찬가지로 박유하의 주장과는 다른 쟁점에 대해 논한 글이므로, 성실히 본서의 기술을 읽으려 하는 독자이면 일수록 더욱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헌재소원의 쟁점을 대폭 뛰어넘어 사실인정의 차원에서(인신매매의 주체는 업자이다!) 일본국가의 법적 책임을 부정하고 청구인들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부분에 본서의 ‘획기성’이 있다. 1990년대에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가 원고가 되었던 전후보상재판은 모두 최종적으로는 패소로 끝났지만,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판결에서도 사실인정 차원에서는 일본군의 ‘직접 경영’이나 ‘설치 관리’를 불법행위로 인정한 케이스가 있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더욱이 후술하듯이, 엄밀히 말하면 일본정부도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박유하는 한국정부나 일본정부의 입장을 훨씬 뛰어넘어 청구인들의 손해배상청구권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1. 한일회담론의 문제점: 김창록 논문의 왜곡

 

다음으로 박유하의 두 가지 주장(위안부’ 여성들의 청구권은 한일회담에서 한국정부에 의해 포기되었다. 따라서‘위안부’ 여성들에게는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없다)를 검토하고자 한다.

 

박유하는 헌재의 결정을 비판하면서 아래와 같이 배상청구권 부정론을 보강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많은 위안부들이 가혹한 인권유린적 상황에 있었던 것이 확실한 이상, 그것에 대해 후세 사람에 의한 하등의 사죄와 보상이 행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개인이 피해보상을 받을 기회를 빼앗은 것은 일본정부가 아니라 한국정부였다는 것, 그리고 90년대에 이미 한 차례 일본정부에 의한 보상이 이루어졌고, 상당수의 위안부가 일본의 보상을 받아들인 것은 확인하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때의 모든 판단은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불충분한 인식과 자료에 기초하여 내려진 것이었다”(193쪽)

 

한일회담에서 ‘위안부’ 여성들의 개인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한국정부였다는 주장은 본서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이다.

 

만약 박유하의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일회담연구에서 극히 중요한 발견이 이루어진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한일청구권협정에서 “완전하며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결정된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이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한일회담연구에서 극히 중요한 논점이었는데, ‘위안부’ 여성을 둘러싼 문제가 논의되었는지의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공개된 한일회담관계문서에서도 1953년 회담에서 한국측 위원이 점령지에서 귀환한 조선인의 ‘예탁금’을 논의하는 문맥에서 “한국 여자로 전시중에 해군이 관할했던 싱가포르 등 남방에 위안부로 가서 돈이나 재산을 남겨놓고 귀국한 사람이 있다”고 언급한 것이 지적되는데 머물러 있으며, 청구권을 둘러싼 교섭에서 논의되었는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吉澤文寿, 「日韓請求権協定と「慰安婦」問題」, 西野瑠美子他 編, 『「慰安婦」バッシングを越えて』, 大月書店, 2013).

 

하지만 박유하의 주장은 이 연구들의 성과에 입각한 것이 전혀 아니며, 선행연구의 왜곡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위의 주장을 하면서 박유하가 의거한 것은 김창록의 논문인 「1965년 한일조약과 한국인 개인의 권리」인데(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편, 『의제로 본 한일회담』(외교문서 공개와 한일회담의 재조명 2), 선인, 2010. 이하 김창록 논문이라 약기한다), 박유하는 김창록 논문의 취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논문의 취지와는 정반대 주장의 논거로 삼고 있다. 아래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김창록 논문의 과제는 1965년 한일조약 및 제협정 조인에 의해 “한국인 개인의 권리가 어떻게 처리되었는가”(229쪽), 양국 정부가 “무엇을 ‘합의’했는가”(230쪽)에 대해 검토하는 데에 있다. 지금까지 한일 양 정부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던”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제2조 제1항)란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해석을 취해 왔는데, 애초에 65년 조인 당시에는 어떠한 내용의 ‘합의’가 이루어졌는지를 주로 한국측이 공개한 회담 관련 문서를 이용해서 찾으려는 것이다.

 

김창록 논문의 결론은 이 물음에 직접적이고 명확히 답할 수 있는 자료는 한국측이 공개한 자료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258쪽)는 것이다. 다만, ‘실마리’가 되는 자료는 있다. 그래서 김창록 논문이 주목하는 것은 1961년의 예비회담 및 제6차 회담에서 있었던 ‘피징용자’를 둘러싼 논의이다.

 

한일예비회의에 앞서 한국측은 「한국의 대일청구요강」(1960.11.10)을 제시하여 “변제를 청구할” “청구권”으로 5항목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도 ‘피징용인 미수금’을 둘러싸고 한일은 (1)해결시기, (2)보상금의 성격, (3)보상의 형식을 둘러싸고 대립한 것을 김창록 논문은 소개한다. 일본측은 (1)국교정상화 이후에, (2)일본법(국민징용령, 공장법, 원호법)에서 인정되는 것에 한하여, (3)”개별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을 제안한 데 반해 한국측은 (1)정상화 이전에 (2)일본법 이외의 “새로운 기초하”에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3)한국정부에 일관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249쪽).

 

본서에서 박유하가 인용한 것이 이 부분이다. 김창록 논문을 인용한 후에 박유하는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

 

한국정부가 이때 일본의 의견을 받아들여 개인보상부분을 남겨두었다면, 다른 피해자도 각각 ‘적법’한 보상을 받는 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그렇게 하지는 않았고, 지금까지 위안부나 피해자들이 대부분의 재판에서 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이 지금까지 줄곧 패소한 것에 관해 한국은 일본에 사죄의식이 없는 것으로 보고 비난해 왔다. 그러나 한국의 소송이 패배한 것은 단순이 ‘일본이 사죄의식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1965년에 끝났다고 일본이 생각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와 같은 사정도 있었던 것이다. 개인의 청구분을 대신 수취하고 일본에 대해서 이미 개인청구를 할 수 없게 한 것은 유감스럽게도 한국정부였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적인 한계이기도 했다.”(188쪽)

 

만약 김창록 씨가 이 부분을 읽는다면 너무 놀라 졸도하지 않을까.

 

애초에 여기에서 다루어진 한일간의 의제는 “피징용자의 미수금” 문제이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아니다. 또한“피징용자의 미수금”은 청구권협정이 말하는 “재산, 권리 및 이익”에 속하는 것이지,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강제동원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 같은 ‘청구권’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김창록 논문은 이것에 대해 명확히 나누어 논의하고 있으며(245-246쪽), 제대로 읽으면 혼동의 여지는 없다.

 

무엇보다도 김창록 논문이 올바르게 지적하듯이, 여기서 일본측 대표가 제안한 취지는, 보상은 일본의 “법률상 유효하게 성립한 것에 한”하며(250쪽), 일본의 법이 상정하지 않은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은 전혀 불가하다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김창록이 지적하듯이 “관련 자료의 대부분이 소실되어 한국인이 일본 국내의 법적 절차를 밟아 지급을 받는 것이 쉽지 않음을 생각하면 사실상 보상을 유명무실화하려는 주장이었다”(250쪽)고 할 수 있다. 일본법은 말할 필요도 없이 ‘위안부’를 군인・군속으로 취급하지 않으며, 이 조건하에서 보상의 대상이 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일본의 의견을 받아들여 개인보상 부분을 남겨 두었다면 다른 피해자도 각각 ‘적법’한 보상을 받는 것이 가능”해질 리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위안부’는 군에 직접고용된 것이 아니라고 지겹도록 강조하는 것은 박유하 자신이 아닌가.

 

오히려 김창록 논문은 한국측 대표가 회담에서 논의된 문제 이외의 청구권 행사의 여지를 남기려고 시도한 케이스를 소개하고 있다. 제6차 회담에서는 한국측은 앞에서 제시한 청구권요강의 내용과 관련하여 “요강 제1항 내지 제5항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한일회담 성립 이후라도 개별적으로 행사할 수 있음을 인정할 것. 이 경우에는 국교정상화까지 시효가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할 것”을 제안했다. 그 이유는 “의제에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회담이 성립했으니까 이러한 개인 청구권이 사라지는 것은 곤란한 문제가 아닌가. 따라서 이 경우에는 회담과는 별도로 개인간의 청구 또는 법원에 대한 소송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251쪽). 하지만 일본측은 어디까지나 회담에 의해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종결시킨다는 입장을 양보하지 않았다.

 

김창록 논문은 한국측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극히 타당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가한다(252쪽). 하지만1962년 11월의 ‘김종필-오히라 메모’에 의한 합의 이후에 경제협력의 명목을 둘러싼 ‘커다란 이야기’에 대한 논의로 옮겨가 이러한 개인 청구권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논의되지 않고 말았다(254쪽). 이로 인해 1965년의 협정체결 시점의 ‘청구권’ 범위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김창록 논문은 결론을 내린 것이다.

 

김창록 논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같은 회담에서는 논의되지 않았던 문제에 관한 청구권 행사 여지를 남기려고 했던 한국측 대표의 제안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유하는 오히려 그것과는 정반대의 주장(한국정부야말로 일본군 ‘위안부’ 등의 청구권을 자진해서 포기했다)을 전개하기 위해 이용한 것이다. 이러한 인용은 단순한 오독을 넘은 논문의 취지의 악질적인 왜곡이다.

 

김창록 논문에 입각해서 한국정부의 문제를 지적한다면, 오히려 회담에서의 이러한 청구권을 둘러싼 논의를 정치적인 고려에 따라 제쳐두고 재빨리 협정체결로 달려간 점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헌재의 결정은 아래와 같이 지적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 정부가 직접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의 실현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회복에 대한 장애상태를 초래한 데는 청구권의 내용을 명확히 하지 않고 ‘모든 청구권’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하여 이 사건 협정을 체결한 우리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그 장애상태를 제거하는 행위로 나아가야 할 구체적 의무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즉,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한국정부에도 책임이 있으므로, 거기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기본권을 보호할 ‘구체적인 의무’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물론 한국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해도 헌법재판소는 박유하처럼 청구인들의 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의해 소멸되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일교섭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았던 문제가 있어 여전히 청구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기에 상응하는 근거가 있는 이상, 협정에 기초하여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정」을 계기로 하는 “’외교적인 해결’ 시도는 한일관계를 악화시켰을 뿐이다”(196쪽)라고 박유하는 잘라 말하지만, 왜곡과 혼동, 사실오인에 의해 멋대로 피해당사자들의 권리를 소멸시킴으로써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박유하 자신이 아닐까.

 

(정영환)

 

朴裕河『帝国の慰安婦』の「方法」について(4) : 日朝国交「正常化」と植民地支配責任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의 ‘방법’에 대하여(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