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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화해를 위해서』를 둘러싼 '논쟁'을 돌아보다(1)

1. 박유하 『화해를 위해서』와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의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주장에 대해서는, 이전의 저서인 박유하 『화해를 위해서: 교과서, 위안부, 야스쿠니, 독도』(뿌리와이파리, 2005. 일본어판은 平凡社, 2006. 후에 平凡社 라이브러리, 2011, 이하 『화해』)가 간행되었을 때 몇가지 결정적인 비판이 이루어졌다. 물론 박유하는 비판을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라, 몇번에 걸쳐 『화해』 비판에 대한 '반론'을 시도했지만, 그것들은 모두 설득력을 결여한 변명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로 인해 『제국의 위안부』는 당시에 지적된 문제를 거의 모두 계승하게 된다. 아마도 앞으로 이루어지게 될 『제국의 위안부』 비판에 대해서도, 박유하는 동일한 변명을 반복할 것으로 보인다.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되는 것을 극력 회피하기 위해서도 이 기회에 『화해』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서 정리하고 의견을 더하고자 한다.

 

검토에 앞서 『화해를 위해서』 간행 당시에 발표된 비판을 소개해 둔다(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초출은 생략했다). 다행히 몇 편은 웹으로 읽을 수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아울러 링크를 걸어 둔다.

  • 김부자, 「'위안부' 문제와 탈식민주의 : 역사수정주의적인 '화해'에 대한 저항」, 나카노 도시오 편, 『역사와 책임: '위안부' 문제와 1990 년대』, 青弓社, 2008.
  • 나카노 도시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역사에 책임」; 「전후 책임과 일본인의 ‘주체성’」, 위의 책.
  • 윤건차, 『사상 체험의 교착: 일본 · 한국 · 재일 1945년 이후』, 岩波書店, 2008.
  • 야마시타 영애, 『내셔널리즘의 틈새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또 하나의 시좌』, 明石書店, 2008.
  • 고화정 · 정영환 · 나카니시 신타로, 「좌담회: 지금 왜 ‘화해’가 요구되는 것인가?」, 『前夜 NEWS LETTER」제4호, 2008년 5월
  • 하야오 다카노리, 「'화해'론 비판: 일란 파페 『중개자의 내러티브』에서 배운다」, 『계간 전쟁 책임 연구』 61, 2008.
  • 송연옥, 『탈제국의 페미니즘을 찾아서』, 有志舎, 2009.
  • 서경식,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박유하 『화해를 위해서』 비판」, 『식민지주의의 폭력』, 高文研, 2010.
  • 니시노 루미코, 「피해자 부재 '화해론'을 비판한다」, 니시노 루미코 · 김부자 · 오노자와 아카네 책임 편집, 『'위안부 '비난을 넘어서: '고노 담화'와 일본의 책임』, 大月書店, 2013.
  • 스즈키 유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국민기금' 해설 편」, 스즈키 유코 편 해설, 『자료집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국민기금"』, 梨の木舎, 2013.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박유하의 반론으로는 내가 아는 한 다음 두 논고가 있다.

  

2. 김부자의 비판과 반비판

 우선 김부자의 『화해』 비판을 다루고자 한다(김부자, 「'위안부' 문제와 탈식민주의 : 역사수정주의적인 '화해'에 대한 저항」, 나카노 도시오 편, 『역사와 책임: '위안부' 문제와 1990 년대』, 青弓社, 2008. 초출은 『インパクション』 158, 2007. 인용은 『역사와 책임』에서). 김부자의 비판은 당시 발표된 『화해』 비판 중에서 가장 체계적인 것이었다. 박유하의 일본군 '위안부'나 보상 문제 이해에 대한 전면적인 반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김부자는 『화해』가 선행연구를 편의적으로 인용하여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강제성이​​나 증언의 신뢰성에 부정적인 우파의 논의를 답습하고 있으며, 1990년대 '위안부' 제도의 연구성과를 무화 · 오독 · 오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102-106쪽). 『제국의 위안부』와 통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박유하는 김부자의 비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나는 이러한 비판들에 대해서 비판 자체보다 비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억측이나 경계나 불신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의 절반을 채우는 ‘우익 비판’에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역사수정주의에 친화적"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일본의 책임’을 회피하는 '의도'를 읽으려고 반복되는 '전략적' '정치적 의도' 등의 단정에 보이는 의심으로 점철된 태도야말로 모든 혼란의 근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긴 페이지를 할애한 김부자의 비판이 일일이 지적할 수 없을 정도의 오독과 왜곡으로 가득 찬 주장이 되어 버린 것도 그런 태도에 의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박유하, 「’사이에 선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141쪽)

 

"일일이 지적할 수 없을 정도의 오독과 왜곡으로 가득 찬 주장"이라고 하니, 거의 전면적인 부정이라고 해도 좋다. 김부자의 비판은 정말로 "오독과 왜곡으로 가득 찬 주장"일까. 아래에서 검증해 보고자 한다.

 

 

①연행의 강제성에 대해서

  첫 번째 논점은 연행의 강제성에 관한 요시미 요시아키 연구의 왜곡이다. 김부자는 "일본의 우파는 공문서 중심주의의 입장에 서서 피해자 증언의 신뢰성을 부정하고,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사기​​술을 사용하고 있지만, 문제는 박유하도 이와 똑같은 씨름판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김부자, 「'위안부' 문제와 탈식민주의」, 103쪽)고 지적한 후에, 박유하가 요시미 요시아키의 연구를 주장의 핵심과는 "정반대의 인용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화해』가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는 새역모의 주장(= '위안부'는 일반적인 ‘매춘부’와 다르지 않다)을 소개 한 것에 이어, 이영훈의 주장을 소개하고, 나아가 요시미 요시아키가 “”관헌에 의한 노예사냥과 같은 연행"이 조선, 대만에서 있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요시미 요시아키 · 가와다 후미코, 1997, 24쪽)고 언급하고 있다.”(『화해』, 62-63쪽)고 기술한 것에 대해 김부자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그러나 요시미는 인용된 동일한 저서의 동일한 부분에서 "위법적인 지시를 명령서에 쓸 리는 없지 않은가", "”관헌에 의한 노예사냥과 같은 연행”이 점령지인 중국과 동남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점령지에서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吉見, 『ウソと真実』, 24쪽)고 언급했으며, 또한 "관헌에 의한 노예사냥과 같은 연행"은 "문제를 왜소화하는 것이다. 나아가 강제 연행만을 문제 삼는 것은 이상하다"(吉見, 『ウソと真実』, 22쪽)고 명확히 비판하고 있다. 즉 박유하는 요시미의 주장의 핵심 부분에 대해 정반대의 인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연구자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인용 방법이다.(김부자, 「'위안부'문제와 탈식민주의」, 103-104쪽. 강조는 원문)

 

이에 대해 박유하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강조는 인용자. 이하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동일).

 

예를 들어 김부자 씨는 ‘강제성’ 문제에 대해서 내가 요시미 요시아키 씨의 저서가 "강제성을 나타내는 자료는 없다"고 한 것을 거론해서 내가 저자의 의도에 반한 "자의적"인 인용을 "의도적으로" 한 것처럼 비판하고 "연구자로서 있어서는 안 된다"며 마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요시미 씨의 저서가 어떤 입장에서 쓰여진 것인지는 당연히 이해하고 있으며, 나의 논의에서 필요했던 것은 요시미 씨의 책의 의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연구자조차도 "관헌에 의한 노예사냥과 같은 연행이 조선, 대만에서 있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점이었다. 긴 인용을 하지 않는 것은 단지 나의 글쓰기 방식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을 가지고 “자의적”이며 “의도적”이라고 하는 것은 왜곡에 지나지 않는다.(박유하 「"사이에 선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141쪽)

 

즉 자신은 요시미의 '의도'는 이해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관헌에 의한 노예사냥과 같은 연행"이 조선, 대만에서 있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기술한 것 자체는 틀림이 없으니까 "사실"의 인용으로는 부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김부자의 비판에 대한 몰이해가 있는 것 같다. 다시 문제가 된 『화해』의 해당 부분을 인용해 보자(강조는 인용자).

 

그런데 '강제성'에 대한 이의는 한국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 이영훈은 "강제로 끌려 간" '위안부'는 없었다고 한다. [중략]

위안소의 설치는 일본정부가 관여한 것을 처음으로 밝힌 ‘위안부’ 연구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또한 ""관헌에 의한 노예사냥과 같은 연행"이 조선, 대만에서 있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디"(요시미 요시아키 · 카와다 후미코, 1997, 24쪽)고 기술하고 있다.(『화해』, 62-63쪽)

 

이 단락을 편견없이 읽으면, “요시미 요시아키 또한” “'강제성'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논자라고 독자는 생각할 것이다. 박유하는 어디까지나 요시미가 지적한 '팩트'를 소개했을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이 변명은 성립되지 않는다. 명백히 “’강제성’에 대한 이의”의 예시로서(“요시미 요시아키 또한”), 요시미의 지적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시미의 주장의 핵심이 “강제성”을 “관헌에 의한 노예사냥과 같은 연행”으로 왜소화하는 주장에 대한 반박인 이상, 이것을 “’강제성’에 대한 이의”의 예시로 사용하는 것은 김부자가 언급한 대로 "정반대의 인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박유하는 이렇게 강제를 둘러싼 논의의 표층을 포착하는데 머문 채, 일본군의 문제를 추궁하는 것을 그만 둔다. 그리고 매춘이 여성 본인의 자유 의지인지 아닌지, 위안소가 '합법적'이었는지 아닌지와 같은 그때까지의 논의와는 무관한 논점으로 옮겨진다. “정말로 군부대에서 청소나 빨래라도 하는 것으로 알고 “스스로 자원한” 소녀이든, ‘매춘’을 하는지 알면서도 갔던 여성이든, 당시의 일본이 군대를 위한 조직을 발안했다는 점에서 보면, 그 구조적인 강제성은 결코 약화되지는 않는다."(64쪽)는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위안소로의 징집은 "자발적으로" 갔던 예만 언급되어 있고 "구조적인 강제성"이라는 말로써 총독부의 여성 징집의 관여나 감언 · 사기에 의한 연행과 같은 문제를 검토하는 것은 회피되는 것이다.

 

② 위안소 설치의 목적에 대해서

두 번째 논점은 위안소 설치의 목적에 관한 요시미 연구의 오독이다. 이 부분은 박유하의 입론의 혼란함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부분이다.

 

박유하는 요시미의 연구를 원용하여 “전쟁터에서의 '위안부'는 직접적으로는 일반 여성의 '강간'을 억제하기 위해 고안된 존재였다(요시미, 1998, 27쪽). 그런 의미에서는 "허용된 강간"의 성격을 띤 매춘은 일반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른바 '위안부'는 구조적으로 일반 여성을 위한 희생양이기도 했던 것이다.”(『화해』, 87쪽)라고 썼다. 이에 대해, 김부자는 “'위안부' 제도는 일반 여성을 강간으로부터 "보호"할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 아니라, 요시미에 의하면, 일본군에 의한 강간이 지역 주민들의 분노를 샀기 때문에 치안유지상, 작전상 지장을 초래했기 때문에 그를 위한 대책(吉見, 『従軍慰安婦』, 30쪽)으로 실행 된 것으로, 어디까지나 일본군을 위해서였다.”(김부자, 「'위안부' 문제와 탈식민주의」, 105-106쪽) 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박유하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또한 위안부 제도가 ‘군대를 위한’ 제도였다고 책 속에서 반복해서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설치 목적이 "일반 여성의 강간으로부터의 보호"도 의식한 것이었다는 것을 거론하여 그 말이 ‘일본군을 위해서’라는 점을 회피 한 것인 듯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안부라는 존재가 "구조적으로 일반 여성을 위한 희생양"이라고 쓴 것은 위안부 시설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도 '위안부'라는 존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뿐이다. 더욱이 위안부 제도를 국가가 "묵인"했다고 쓴 것을 김부자 씨는 국가를 책임의 주체가 아니라고 보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박유하, 「’사이에 선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141-142쪽)

 

『화해』에서 박유하는 "전쟁터의 '위안부'은 직접적으로는 일반 여성의 '강간'을 억제하기 위해 고안된 존재였다"고 썼다. 여기서 말하는 '일반 여성'이 점령지나 전쟁터의 일본의 '적국' 여성을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다. 박유하는 중국인 여성 등에 대한 ‘강간’을 억제하기 위해 '위안부'는 고안했다고 썼고, 김부자는 그것은 너무나도 주종이 전도된 견해라고 비판했다. 어디까지나 일본군의 작전 수행상의 필요가 ‘주’이지, ‘적국’ 여성의 보호 등은 안중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를 전제로 다시 위의 반론을 읽으면, 이상한 점이 두드러진다. 이 반론에서는 "'여성'도 '위안부'라는 존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한다. 명백히 여기서 말하는 '여성' '일반 여성'은 전쟁터의 '적국' 여성을 가리키기 때문에, 예를 들면 일본군에게 ‘강간’당할 가능성이 있었던 중국인 여성이 "'위안부'라는 존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박유하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강간’을 억제하기 위해 위안소는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강간’당할 수도 있었던 여성은 '위안소'라는 존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가공할만한 '책임'론이다.

 

박유하 진심으로 전쟁터의 '적국' 여성들은 "'위안소'라는 존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이 부분이 박유하의 이해력 · 필력 부족으로 생긴 오기이기를 바라지만, 적어도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읽는 한, 이 이해 이외에는 성립하지 않는다.

 

혹는 박유하는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른다. 자신은 일본군을 면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일본의 책임’에 대해 논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하지만 위와 같은 책임론은 표면상의 ‘일본의 책임’에 대한 언급을 그 근저에서 부정하는 것이다. 박유하의 입론이 성립되기 위하여는, 일본군의 폭력은 소여의 사실이라고 상정하는, 즉 '자연화'하는 사기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군인의 강간이 용서받지 못할 폭력이라는 인식에 서는 한, 어떤 식으로든 ‘강간’당할 수도 있었던 여성들의 '책임' 따 따위는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군인의 강간을 '자연화'하여 소여된 불가피한 현상으로 간주하면 문제는 소여의 폭력을 어디에 할당할지로 왜소화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부자에 의한 『화해』의 위안소 설치 목적 이해에 대한 비판이 얼마나 핵심을 찌르는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설치 목적을 "여성 보호"로 간주한 탓에, ‘보호’되는 여성 측에도 위안소 설치에 대한 하등의 '책임'이 있다는 도착된 주장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박유하의 도착된 '책임'론은 『화해』의 다른 부분에도 확인된다. ”희생양” 운운에 이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그래도 일반 여성은 ‘매춘’을 자신과는 관계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매춘’이 지탄받으면 받을수록 '순결'한 '정조'를 지닌 여성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정대협'의 대표가 일본의 국민기금을 받은 사람들을 ‘공창’이라고 언급한 것은, 그러한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당시 '위안부'로 보내지는 딸을 두 눈으로 보고서도 못 본 체했거나,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보내는 쪽에 서 있었던 자에게 책임은 없을까. 지금까지의 인식대로 길거리에서 강제로 끌려 갔다면, 그러한 참으로 난폭한 폭력적인 장면이었다면, 그런데도 어떠한 반발이나 저항도 없었다고 한다면, 그러한 상황을 그저 바라보았던, 방관했던 사람들에게 책임은 없을까.(『화해』, 87쪽)

 

이것은 "허용된 강간"의 성격을 띤 매춘은 일반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른바 '위안부'는 구조적으로 일반 여성을 위한 희생양이기도 했던 것이다”라는 기술을 잇는 부분이다. ‘일반 여성’이라는 말로 포괄되어 있지만, 거기에서 구체적으로 상정되는 대상은 전쟁터의 '적국'여성에서 ‘일반 여성’, 그리고 정대협의 여성들로 어지럽게 옮겨간다. 그 후에 “당시 ‘위안부’로 ~”를 잇는 부분에서는 이미 '여성'의 이야기도 없어지고, 독자는 연기에 둘러싸이고 만다.

 

본래 충분히 저항할 수 없었던/방관했던 책임과, 연행한 책임이 완전히 차원이 다른 '책임'이라는 것은 자명할 것이다. 더욱이 『화해』에서 박유하는 식민지에서의 강제 연행을 사실상 부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어떠한 반발이나 저항도 없었다고 한다면, 그러한 상황을 그저 바라보았던, 방관했던 사람들에게 책임은 없을까”라고 추궁하는 셈이다. 이미 논의도 아니고 빈정거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박유하는 김부자에 대한 반론을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이러한 오독은 김부자 씨가 ‘역사 연구자’로 ‘말’의 독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까. 『화해』를 "박유하는 한국의 일본문학연구자이기 때문에 이 책은 저자에게 전공 밖의 역사문제를 다룬 일반 계몽서”라고 하면서 내용이 "어설프다"고 하는 비판에서 나는 ‘전문가’의 오만과 폐색감을 볼 수밖에 없다.(박유하, 「’사이에 선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141-142쪽)

 

너무나도 부당한 단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박유하가 반박한 부분에 한정하더라도(반박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김부자에 의한 비판이 ‘오독’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은 명백할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의 제1부 등을 읽으면, 필자가 ‘일본문학 연구자'임을 의심하고 싶어지지만, 적어도 김부자의 비판은 박유하에게 어떠한 독창적인 사료 조작이나 분석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헌의 인용을 적절하게 하라, 선행연구를 이해하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이것은 해당 테마에 대해서 저작을 간행하는 자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요구이다. 그것을 완수하지 않았던 것이다. 박유하는 "비판 자체보다 비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억측이나 경계나 불신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했는데, 그러한 수준의 저작이 유통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본서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정치적 배경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위로 본 바와 같은 듯한 박유하의 논의는 '책임'이라는 말을 정의하지 않고 마법의 주문처럼 사용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지금까지 『제국의 위안부』 비판에서 반복해서 이러한 개념 정의의 애매함을 지적해 온 것은 학술서의 작법을 가르치고 싶어서가 아니다. ‘책임’ ‘보상’ ‘제국’​ ‘동원’ ‘화해’라는 극히 중요하고 논쟁적인 개념을 정의하지 않는 것이 본서의 극히 핵심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박유하의 서술에 각자의 환영을 투영하고, '이해'한 것처럼 느낀다. 모순이나 의문을 지적받아도 박유하는 무한히 '진의'을 말함으로써 ‘지식인’으로서의 명맥을 계속 유지한다. 이러한 지적 사기술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도 '방법'에 대한 비판은 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정영환)

 

 

메이지가쿠인 대학 부교수 정영환

 

원문:朴裕河『和解のために』をめぐる「論争」をふりかえる(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