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의 ‘반론’ 검증: 재론 『제국의 위안부』의 ‘방법’에 대하여(1)

 한국의 역사학술지 『역사비평』 112호에 박유하 씨(이하 경칭 생략)의 반론이 게재되었다(박유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1965년 체제: 정영환의 『제국의 위안부』 바판에 답한다」, 『역사비평』 112, 2015, 이하 「반론」으로 약칭). 「반론」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1. 오독과 왜곡: 정영환의 ‘방법’

 1)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국가의 책임에 대한 입장

 2)한일협정에 대한 입장

 3)방법에 대하여(이상 (1)에서 검증)

2. ‘방법’ 비판에 대하여

 1)빗나간 잣대

 2)폄하

 3)‘방법’ 이해의 미숙

3. 『화해를 위해서』 비판에 대해서

 1)도덕성 공격의 문제

 2)오독과 왜곡

 3)총체적 몰이해

4. 정영환의 ‘한일협정’ 이해의 오류

 1)위안부 문제에 관한 책임에 대해서

 2)헌재 판결에 대해서

 3)한일회담에 대해서

5. 생산적인 담론을 위해서

 

  

  「반론」은 나의 비판에 대한 반박임과 동시에 나의 비판 방식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반론」에서의 박유하의 반박 방식은 『제국의 위안부』에서의 저자의 ‘방법’의 결함을 또 다시 부각시켰다고 나는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역사비평』 편집위원회는 본인을 위해서도 조금 더 의미가 있는 반론이 되도록 의견을 달아서 반려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검증에 앞서 지적해 두자.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비판적 지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조금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제국의 위안부』가 일반 역사서(이 책은 학술서는 아니다)로서의 최소한의 모럴조차 결여한 결함품이라고 주장하며 연구자로서의 윤리를 의심하는 듯한 비판을 던졌던 것이다. 소정의 검증 결과 그 심각함의 정도에 아연실색하여 전면적인 비판을 가한 평론을 『역사비평』에 게재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반론」도 유감스럽게도 너무나 레벨이 낮아 제대로 된 반론이라고 할 수 없다. 제기되고 있는 문제의 심각함은, 비판을 어중간하게 짜깁기하여 적당히 조롱을 섞어가면서 대응하는 식으로 ‘반론’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우선 스스로에 대한 비판을 주의 깊게 읽고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무엇을 썼는지를 자세히 재검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산적인 논쟁 따위는 성립할 수 없다. 이미 늦었을지 모르지만, 박유하에게는 비판에 성실히 대면하도록 다시 한 번 강하게 요구하고자 한다.

 다만, 그러한 박유하의 허술함을 포함해서 「반론」 자체를 검증하는 것은, 아직 박유하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일본어권 사람들에게도 나름대로 유익할 것으로 보인다. 아래에서 「반론」을 자세히 번역, 소개하면서 나의 비판에 응답한 것인지, ‘반론’이라고 할 만한 것인지에 대해 순서대로 검증하고자 한다. 아울러 졸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1965년 체제의 재심판: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기본적으로는 블로그에서 연재해 온 『제국의 위안부』 비판을 기초로 재구성하여 한국 독자들을 대상으로 가필 수정한 것이므로 커다란 변경은 없다.

 

1. 들어가며

2. 『제국의 위안부』의 ‘방법’에 대하여

3. 『화해를 위해서』와 『제국의 위안부』

4. 『제국의 위안부』의 한일협정 이해의 오류

 1) 『제국의 위안부』의 헌법재판소 결정 비판 논리

 2) 쟁점의 착오

 3) 한일회담론의 문제점① 권리를 말소한 것은 한국 정부?

 4) 한일회담론의 문제점② ‘경제협력’은 ‘전후보상’인가?

5. 끝으로

 

 

  1. 「반론」의 검증 ①: 【1. 오독과 왜곡: 정영환의 ‘방법’】에 대하여

 

 「반론」은 모두 5절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은 제1절의 「오독과 왜곡: 정영환의 ‘방법’」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박유하는 반론에 앞서 내가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한 것 자체를 문제시한다. 「반론」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아울러, 아래에서는 「반론」에서 인용한 것은 푸른색으로 표시한다. 강조는 인용자).

 

  재일교포 학자 정영환이 나의 책 『제국의 위안부: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에 대한 비판을 『역사비평』 111호에 실었다. 우선 이 비판의 당위성 여부에 대해 말하기 전에 비판 자체에 유감을 표한다. 왜냐하면, 나는 현재 이 책의 저자로서 고발당한 상태이고, 그런 한 모든 비판은 집필자의 의사 여부를 떠나 직간접으로 고발에 가담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8월에 제출된 원고 측 문서에는 정영환의 비판논지가 차용되어 있었다. (……) 나에 대한 비판에 참여한 학자/지식인들이 이러한 정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비판을 하고 싶다면 소송을 기각하라는 목소리가 먼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법정으로 보내진 학술서’에 대해 취해야 했던, ‘학자’로서의 할 일이 아니었을까.

  

  내 생각은 박유하와는 다르다. “모든 비판은 집필자의 의사 여부를 떠나 직간접으로 고발에 가담하는 일이 된다”는 주장을 학술지에서 표명할 수 있는 감각은 애초에 나에게 이해 가능한 것이 아니며, 박유하가 9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인격권과 명예권’을 침해했다고 고발당한 것과, 공적인 언론 공간에서 『제국의 위안부』를 논평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차원의 문제이다. 내가 『제국의 위안부』를 논평하는 자유는 ‘위안부’ 피해자의 고발로도 방해받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본서는 일본어로도 출판되어 있고, 일본과 한국의 독자를 주요한 대상으로 한 본서에 대해 고발을 이유로 논평을 자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확실히 나는 9명의 피해자들의 주장의 많은 부분에 찬동하지만, 고발 자체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보아도 ‘인격권과 명예권’의 침해 여부가 다투어지는 법정에서의 논의를 떠나, 본서가 총체적으로 공적인 언론공간에서 논평되는 것은 저자에게 바람직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가령 “이 책의 저자로서 고발당한 상태”이므로 논평하지 말라고 한다면, 본서를 칭찬하는 논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박유하는 동일한 “유감을 표”해야 하지 않을까. 박유하의 ‘유감’ 표명은 차원이 다른 문제를 들고 나온 부당한 것이다.

 이어서 박유하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일찍부터 시작되었고, 심지어 한겨레신문에 인용되어 나에 대한 여론의 비판에 기여했음에도 정영환의 비판에 그동안 대답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비판이 오독과 곡해로 가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그가 나의 것이라고 말했던 “자의적 인용”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결론이 앞서는 적대를 기반에 깔고 있어, 사실 읽는 일 자체가 우울했다. 따라서, 구체적인 반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나의 입장과 논지를 확인해두도록 하겠다.

 

 나의 비판은 “오독과 곡해로 가득한 것”이고 “자의적 인용”으로 점철되고 “결론이 앞선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지적은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반론에 임하여 박유하는 또 다시 “자의적 인용”을 반복하며 생산적인 논의를 방해하고 있다.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검증하고자 한다.

 박유하의 첫 번째 반론은 자신은 일본국가의 책임을 추궁하고 있는데 마치 책임을 부정한 것처럼 왜곡한다는 것이다. 아래에서 얼마나 내가 박유하의 주장을 ‘왜곡’했는가 하는 ‘반론’이 이어진다.

 

정영환은 내가 “일본국가의 책임을 부정”(482~483쪽, 이하 ‘쪽’은 생략)한다면서 “식민주의 비판이 없”(492)기에 “식민지배 책임을 묻는 소리를 부정하려고 하는 ‘욕망’에 이 책은 잘 호응”한다고 말하고, 심지어 “역사수정주의자들과의 은밀한 관계를 검토해야 한다”(491)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나는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국가의 책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내가 부정한 것은 ‘법적’ 책임일 뿐이고, 당연히 일본국가의 책임을 물었다. 일본어판에는 “국회결의”가 필요하다고 쓰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영환은 그런 부분에는 침묵할 뿐 아니라 “역사수정주의자”라는, 한국에서 비판받고 있는 존재를 호명해 그들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식의 ‘왜곡’을 자신의 비판 “방법”으로 사용한다.

 

 이 단락에서는 내 비판 중에서 세 곳이 인용되어 있다. 각각의 부분을 아래에 인용한다. 우선은 “일본국가의 책임을 부정”의 부분부터(강조는 박유하의 인용 부분).

 

박유하의 「결정」 비판의 특징은, 이상에서 보았듯이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관하여 사실관계의 수준에서 일본 국가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의 바탕에는 헌법소원의 쟁점에 대한 착오가 있다. 원래 헌법소원의 쟁점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일본 국가의 책임 여하가 아니라,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가 규정한 ‘해결을 위한 조치’를 한국 정부가 취하지 않았다는 부작위가 헌법 위반인가 아닌가에 있었다. 그러나 박유하는 『화해』의 논의를 답습하여 ‘업자 주범설’을 전개하면서 일본 국가의 책임을 부정하였다. 전술한 것처럼 박유하는 일본군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수요’를 만든 책임 혹은 인신매매를 ‘묵인’한 책임이며, 이런 행위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은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졸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1965년 체제의 재심판: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 482-483쪽)

 

  “내가 부정한 것은 ‘법적’ 책임일 뿐이고, 당연히 일본국가의 책임을 물었다”고 박유하는 말한다. 확실히 책임을 묻는 듯한 기술은 있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 보면, 그것은 업자를 주범으로 하고 일본군의 책임을 ‘수요’ 창출과 인신매매 ‘묵인’에 한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초한 것이 아닌가. 이것이 내 비판의 논지이다. 나는 박유하가 일본국가의 책임을 ‘위안부’의 ‘수요’를 만들어내고 인신매매를 ‘묵인’한 것에 한정하고 더욱이 이 행위들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부정했다고 정확하게 요약했다. 흡사 책임을 묻는 듯이 기술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일본국가의 직접적인 책임을 부정했으며, 또한 한정적으로 인정한 ‘수요’ ‘묵인’에 대해서조차도 법적 책임을 부정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나는 물었던 것이다. 이것은 왜곡이 아니라 비판이다. 

  다음으로 “식민주의 비판이 없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제국의 위안부』의 유통과 소비구조 또한 위와 같은 서경식의 지적을 회피해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자’로서 ‘명예 감정’을 유지한 채 식민지배 책임을 묻는 소리를 부정하려고 하는 ‘욕망’에 이 책은 잘 호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기 쉬운 역사수정주의자와는 거리를 두는 ‘리버럴’ 지식인들과 역사주정주의의 은밀한 관계를 검토해야 한다.

  『제국의 위안부』는 표면상 종래의 전쟁책임론의 한계를 극복하여 식민지배 책임의 관점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논한 저작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이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에는 식민주의 비판이 없다. 한일회담을 논할 때 박유하는 한국 정부가 얼마나 식민지배의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강조한다. 이것은 필자도 동의하는 확실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유하는 이 ‘1965년 체제’를 재심판하려는 경향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보는 것이며 그 위에 그 한계를 극복할 길을 찾는 것이다”, “그런 시대적 한계를 검증하여 보완하는 것이다”(252~253쪽)라고 주장한다.(같은 글, 491-492쪽)

  

 여기에서도 나는 『제국의 위안부』에는 얼핏 보면 식민지주의를 묻는 듯한 서술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 박유하의 논의를 소개한 후에 그것을 비판하고 있으며, ‘왜곡’한 것이 아니다. “일본국가의 책임을 물었”던 것에 전혀 ‘침묵’하거나 하지 않았고, 오히려 길게 박유하의 논의를 소개한 후에 그 레토릭의 기만성을 밝힌 것이다. 주장을 잘못 소개하는 것(왜곡)과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비판)의 차이를 박유하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어서 박유하는 다음과 같이 반론한다.

 

정영환의 말대로라면 이 책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들―“이 문제제기에 일본 측이 어떻게 대답해 나갈 것인지의 물음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스기타 아츠시, 서평, 아사히신문 2014. 12. 7), “어디서나 다 있었던 일이라고 일본이 강변하지 않고 제국주의 팽창을 넘어서는 사상을 새롭게 제기할 수 있다면 세계사적 의의는 크지 않은가? [라는 박유하의 물음에] 나는 반대할 이유를 생각해낼 수 없다”(야마다 다카오, 칼럼, 마이니치신문 2014. 12. 21), “나는 이 책을 읽고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아픈 마음이 한층 깊어졌을 뿐이다”(와카미야요시후미, 칼럼, 동아일보 2014. 7. 31)은 다 잘못 읽은 서평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심지어 어떤 우파는 나의 책이 전쟁책임의 틀에서만 다루어졌던 위안부 문제를 식민지배책임으로 물으려 한다면서 “일본 좌파보다 무서운 책”이라거나 “고루한 지배책임론을 들고 나왔다”며 비난하기까지 했다.

 

 이 단락에 전형적으로 드러나 있듯이, 박유하는 종종 진보 매체인 ××가 평가하는데도 나를 우익이라고 하는가라거나, 반대로 우익인 ××가 나를 비판하는데도 역사수정주의라고 하는가 등등의 논법으로 ‘반론’을 한다. 하지만 박유하 비판의 대부분은 산케이(産経), 분슌(文春)적인 역사수정주의뿐만 아니라, 아사히(朝日), 이와나미(岩波)적인 리버럴을 비판하고 있다. 박유하가 ‘산케이’적인 우익이라고 보는 것만이 아니다. 그 ‘아사히’적인 언론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박유하 자신이 잘 알고 있을 터이다. ‘리버럴’에 의한 상찬 기사를 들고 나와도 아무런 ‘반론’도 되지 않는다.

  덧붙여 말하면, 『제국의 위안부』 출판처=아사히신문출판과 같은 계열인 아사히 신문이나 아사히 신문 기자였던 와카미야(若宮)의 호의적인 서평을 소개해도, 일반적으로는 단순한 ‘선전’으로 받아들여질 뿐일 것이다. 또한 『주간 분슌(週刊文春)』에서 하타 이쿠히코(秦郁彦)가 박유하의 주장은 자신과 동일한 것이라고 칭찬했는데, 그것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애초에 지면을 충분히 부여받지 못했다고 분노할 정도라면, 누구누구한테 칭찬받았다/비방을 당했다는 내용으로 스스로의 주장을 포장하는 유치한 ‘반론’ 따위는 싣지 않는 것이 좋다. 언론은 사교가 아닌 것이다. 아울러 박유하가 언급하듯이, 나는 이 논평들의 『제국의 위안부』 평가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므로 이 단락에 이론은 없다.

  박유하는 나아가 ‘왜곡’의 실례로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정영환은 같은 방식으로 내가 “한일합방을 긍정”했다고 쓴다. 그러나 나는 한일합방 무효론에 회의를 표하면서도 “물론 현재의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식민지지배에 대한 책임을 정말로 느낀다면, 그리고 그것을 패전 이후 국가가 정식으로 표현한 일이 없었다는 인식이 혹 일본 정부에 생긴다면, ‘법적’으로는 끝난 한일협정이라 할지라도 재고의 여지는 있을 것이다.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의 국내외적 혼란은 그 재고가 원천적으로 배제된 결과이기도 하다”(『화해를 위해서』, 235)라고 썼다. 말하자면 나는 한일합방도 한일협정도 “긍정”하지 않았다.

 

 박유하는, 인용도 아닌데도 인용부호를 다는, 연구자로서는 치명적인 악습을 가지고 있다. 이 부분을 읽은 사람은 당연히 내가 박유하가 “한일합방을 긍정”했다고 썼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그러한 말을 쓴 적이 없다. 실제로 이 인용에는 쪽수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존재하지 않으니 당연하다. 애초에 나는 ‘한일합방’ 같은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병합’의 문제에 언급한 것은 아래 부분이다.

 

그런데 김창록에 의하면 이런 한국 정부의 ‘경제협력=배상’론은 한일기본조약 제2조의 해석과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제2조를 애초부터 한국병합조약이 무효임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여 ‘병합무효론’을 전제로 한 ‘경제협력’이기에 ‘배상’이라는 해석을 취했던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에서 박유하는 ‘병합’이 법적으로 유효임을 거듭 주장하고 있기에 1965년 당시의 한국정부와도 입장이 다르다.(488쪽)

 

  이것이 어째서 “한일합방을 긍정”한다는 말이 되는 것일까. 박유하는 한국병합조약이 무효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썼을 뿐이다. “한일합방 무효론에 회의를 표”한 것은 박유하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다. 더욱이 박유하가 소개하는 『화해를 위해서』에서 인용한 부분은 ‘병합’조약에 관한 주장이 아니라 한일협정에 대한 설명이라서 아무런 ‘반론’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러한 허술한 ‘반론’을 기초로 박유하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전개한다.

 

  나는 위안부를 만든 것은 근대국민국가의 남성주의, 가부장주의, 제국주의의 여성/민족/계급/매춘차별의식이므로 일본은 그런 근대국가의 시스템 문제였음을 인식하고 위안부에 대해 사죄/보상을 하는 것이 옳다고 썼다. 그런데도 정영환은 ‘박유하는 한일합방을 긍정하고 1965년체제를 수호하고 있으며 위안부 할머니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학자’에 의한 이러한 왜곡을 범죄수준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영환의 비판 “방법”은 서경식이나 김부자 등 다른 재일교포들의 나에 대한 비판방식과 지극히 닮아 있다. 그들 역시 『화해를 위해서』의 반은 일본 비판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고, 나를 ‘우익에 친화적인 역사수정주의자’라는 식으로 말해왔다.

  

 여기에서도 인용도 아닌데도 인용부호를 사용하는 악습이 보인다. 후술하듯이, 박유하가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의 대일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제국의 위안부』의 서술을 읽으면 명확하다(「박유하 『제국의 위안부』의 ‘방법’에 대하여(4)」도 참조). 또한 한일협정의 재협상을 부정하고 협정의 틀 안에서 교섭할 것을 요구한 헌재 결정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일합방을 긍정”했다는 등등은 터무니없는 ‘왜곡’이지만, 병합조약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위에 있듯이 사실이 아닌가. 박유하의 주장을 요약해서 소개하고 또한 그것을 비판적으로 논평한 것이 왜 “범죄수준”이라는 것인가. 박유하가 그렇게까지 주장한다면 내 비판이 어떠한 ‘범죄’를 구성하는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나에 대한 명예훼손에 다름없다.

  또한 나는 “『화해를 위해서』의 반은 일본 비판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고 비판한 것이 아니라, 언급한 후에 그 비판의 방식을 비판한 것이다. 그것은 위에 제시한 몇 가지 인용을 읽으면 명확하다. 사실에 언급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박유하의 주장을 승인하지 않을 뿐이다. 양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반론」 제1절은 세 단락이 남았다. 아래에 인용한다.

 

정영환은 내가 “1965년체제의 수호를 주장”(492)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재협상은 무리라는 생각이 곧 ‘수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나는 일본을 향해서 쓴 부분에서 한일협정은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은 아니었다고 썼다. 정영환이 말하는 것 같은 “수호”는커녕 그 체제에 문제가 있었다고 분명히 지적했다. 한국 정부가 청구권을 없애버린 것을 지적한 것은, 1965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의식은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협정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제2절 이후에 본격적으로 논하고 있으므로 일단 남겨 두자. 제1절을 맺으면서 박유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정영환과 달리, 비판하고 싶을수록 자신도 돌이켜보자는 것이 나의 “방법”이다. 역사학자나 법학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일 수 있지만, 문제 자체 이상으로 양국 ‘갈등’의 원인과 해소에 관심이 큰 연구자로서 필연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정영환은 이 책의 일본어판과 한국어판이 다른 것이 무언가 음험한 “의도”가 있어서인 것처럼 말하지만, 이 책이 대립하는 양국 국민들을 향해 가능한 한 사실에 근접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에 중심을 둔 책인 이상, 일본어판이 일본어 독자를 의식하며 ‘다시’ 쓰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또 시시각각 악화되는 한일관계를 바라보며 가능한 한 빨리 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던 한국어판에는 당연히 거친 곳이 많았다. 따라서 일본어판을 쓰게 되었을 때 그런 곳들이 수정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문제’, ‘일본의 문제’를 따로 볼 수 있도록 구성을 바꾼 것도 그런 맥락에서의 일일 뿐이다.

  

 “방법” 운운하는 것은 시시한 말장난이므로 상대할 필요는 없겠다. 집요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여기에서도 인용도 아닌데도 인용인 것처럼 인용부호를 사용하는 악습이 나온다. 나는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이 다른 것에 대해 “음험한 “의도”가 있어서인 것처럼 말하지” 않았다. ‘의도’라는 말 자체를 나는 사용하지 않았다. 독자가 다른 이상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에서 내용이 다른 경우가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마치 내가 다르게 한 것 자체를 비판한 것처럼 쓰는 것은 그야말로 왜곡이다. 이전에 쓴 지적을 다시 제시한다.

 

그 전에 본서를 ‘읽기’ 위해 필자의 주장의 재구성이나 모순의 지적, 그리고 일본어판과 한글판을 비교 대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말할 나위도 없지만, 일본어판 간행 시에 가필이나 수정을 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수정을 하는 것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지금까지의 작업은 어쩌면 악의를 가지고 박유하의 주장을 왜곡하기 위하여 지엽적인 문제로 흠집을 내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 말하면 필자의 주장의 재구성이라는 작업 없이 본서를 ‘읽는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쪽이 신기하다.

논지의 재구성이나 모순의 지적이라는 작업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본래 이러한 전후모순이나 부정합, 자가당착 같은 것은 본서의 결함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국면에서는 본서에 대한 비판을 무효화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A와 B라는 상호 대립하는 서술이 동거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단순한 결함이다. 하지만 잡다한 정보가 미정리 상태로 담겨져 명료함을 현저히 결여한 경우에 A 비판에 대해서는 “B라고 기술하기도 했다”고 반박하고 B 비판에 대해서는 “A라고 기술하기도 했다”고 반박하는 것으로 마치 반비판을 하고 있는 듯한 외관을 가장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본서는 바로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박유하 『제국의 위안부』의 ‘방법’에 대하여(6))

 

 

 또한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의 양쪽을 읽은 입장에서 말하면, 후자보다도 전자 쪽이 훨씬 내용면에서는 정리되어 있다. “한국어판에는 당연히 거친 곳이 많았다”고 하지만, 일본어판 쪽이 거친 부분이 늘어 있다. 『역사비평』 논문에서는 지면 관계상 생략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까지의 기사를 읽으며, 일본어판이 왜 원서보다 한층 더 지리멸렬한 것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 모두 5절로 구성된 「반론」 중, 제1절에 대해서 거의 전문을 인용하여 검토했다. 이 「반론」에는 『화해를 위해서』 비판에 대한 반론과 마찬가지의 박유하의 수법이 전형적으로 드러나 있다. 일본을 비판하고 있는데도 마치 역사수정주의자나 우익처럼 취급하는 비판자는 나의 주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반론’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론’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완전히 파탄이 나 있다. 또한 자의적인 인용에 그치지 않고 「반론」에서는 인용 같은 것의 창작도 하고 있다. 『제국의 위안부』에서 드러났던 문제점이 다시 분출한 것이다.

 

(정영환)

 

[원문]朴裕河の「反論」を検証する―再論・『帝国の慰安婦』の「方法」について(1)